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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다른 표기 언어 John Taylor
요약 테이블
출생 1580. 8. 24, 잉글랜드 글로스터셔 글로스터
사망 1653. 12, 런던
국적 영국

요약 영국의 논설문 작가, 저널리스트.

'물의 시인'으로 불렸다.

어려서 그래머 스쿨에 보내졌지만, 그의 말로는 '라틴어 형태론에 막혀' 템스 강에서 뱃사공의 조수가 되었다. 해군에 복무할 때는 카디스(1596)와 플로레스(1597)에서 벌어진 전투를 목격했다. 런던으로 돌아온 뒤 템스 강을 오르내리며 승객들을 실어나르는 뱃사공으로 일하다가 몇 년 동안 런던 탑에서 준공무원으로 근무했으며, '뱃사공 조합'의 회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는 귀족 고객들에게 시를 써서 바치거나, 특이한 일련의 여행을 재미있게 묘사한 독특한 제목의 팜플렛을 써서 수입과 명성을 늘려갔다. 그에 못지 않게 쾌활한 성격의 한 동료와 함께 종이배를 타고 마른 생선을 매단 지팡이로 노를 삼아 런던에서 켄트 주 퀸버러까지 여행했다.

특히 또다른 별난 여행자인 토머스 코리에이트와 설전을 벌여 왕실과 일반 대중을 즐겁게 했다. 테일러는 벌레스크가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런던에서 에든버러까지 존 테일러의 무전 순례여행 The Pennyles Pilgrimage…… of John Taylor……from London to Edenborough〉(1618)은 벤 존슨의 비슷한 여행에서 착상을 얻은 듯하다.

그는 브레이마에 도착한 뒤 리스를 거쳐 되돌아와서 존슨을 만났는데, 존슨은 친절하게도 잉글랜드로 무사히 돌아갔을 때 축배를 들라고 그에게 22실링을 주었다. 〈매우 즐거운 나룻배 여행, 돈을 따기 위한 요크 여행 A Verry Merry, Wherry-Ferry-Voyage, or Yorke for my Money〉(1622)·〈런던에서 솔즈베리까지 나룻배를 타고 간 뱃길 여행에서의 새로운 발견 A New Discovery by Sea, With a Wherry from London to Salisbury〉(1923)에서 묘사한 여행들과 마찬가지로 돈을 걸고 프라하로 내기여행을 했다가 그곳에서 보헤미아의 여왕에게 환대를 받았다.

청교도혁명이 시작되자 테일러는 옥스퍼드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왕당파를 지지하는 논설문들을 썼다. 1645년 이 도시가 함락되자 런던으로 돌아가서 죽을 때까지 '왕관'(뒤에 '시인의 머리'로 이름이 바뀜)이라는 선술집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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