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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우센

다른 표기 언어 Ḥans Tau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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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494, 덴마크 핀 섬 비르켄데
사망 1561. 11. 11, 리베
국적 덴마크

요약 덴마크의 종교개혁가.

덴마크의 종교개혁을 주도해 '덴마크의 루터'라고 한다. 원래 로마 가톨릭교도였던 타우센은 슬라겔세 근처 안트보르스코프에 있는 '구호기사단'의 수사가 되었다. 로스토크(1516~21)과 코펜하겐(1521~22)에서 공부를 했고 또한 가르쳤다. 1522년 루뱅대학교에서 플랑드르의 인문주의에 접하게 되었으며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을 습득해 언어학자가 되었다.

다음해 타우센은 비텐베르크로 가서 루터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그가 종교개혁운동에 동조하게 되자 그의 선임자들은 1525년 그를 덴마크로 소환했다. 그는 잠시 동안 유틀란트 비보르에 있는 '구호기사단'의 작은 수도원에 감금되기도 했다. 감옥에서도 그는 감옥 밖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설교했으며, 마침내 수도원장은 그에게 설교대를 제공했다. 곧 그는 비보르 시민들과 합세하여 라틴어 대신 덴마크어로 찬송가를 부르며 예배를 보는 지역교회 하나를 확보했다. 그가 출판한 교회 예배지침서들은 덴마크에서 개혁주의 예배의식을 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수도회를 떠났으며, 1526년 프리드리히 1세는 그를 루터교 목사로 임명했다.

1529년 그는 코펜하겐으로 옮겨가, 종교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설교자로서 명성도 얻었다. 1533년 프리드리히 1세가 죽자 주교 요아힘 뢰노프는 타우센을 신성모독죄로 고발했고, 셸란과 스코네 교구에서 추방했다. 그러자 시민들이 주교에 대항하여 무장 봉기를 일으켰고, 타우센이 중재하지 않았다면 주교는 살해당할 뻔했다.

뢰노프 주교는 자신의 단죄를 철회했으며 타우센이 온건한 설교를 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교구에서 설교하도록 허락했다. 1536년 덴마크의 종교개혁 운동이 마침내 승리하자 그는 코펜하겐대학교에서 히브리어를 강의했으며, 1542년 리베의 루터교 감독이 되었다. 그의 작품 가운데는 설교·찬송가가 있으며, 히브리어 〈구약성서〉의 처음 5권인 모세5경을 덴마크어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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