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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로마 가톨릭 교회 추기경.
2006년 교황 베네딕토 16세 휘하에서 바티칸 국무원장에 취임했다.
베르토네 추기경은 1960년 살레시오회의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는 1967~91년 로마 교황청령 살레시안 대학교에서 도덕신학과 교회법 교수가 되었다. 한편 그는 1983년 교회법령 개정에 기여했으며, 여러 교회 조직과 신앙교리회의 자문역할을 하기도 했다.
신앙교리회는 로마 가톨릭 교리를 준수하는 책임을 갖고 교회법에 따라 징계행위에 대한 경고여부를 판단하는 바티칸의 기관이다. 1995년 베르토네는 신앙교리회의 총무로 임명되었는데, 이 직책으로 인해 당시 이 기관의 최고책임자였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과 가까이 일하게 되었다. 또한 베르토네는 베르첼리 대주교(1991~95)에 임명되었고, 이어서 제노바(2002~06)의 대주교로 봉직했다. 2003년 교황 요한네스 파울루스 2세로부터 추기경 서품을 받았다.
2006년에는 라칭거, 그 다음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그를 국무원장으로 임명했는데, 이 직위는 교회 서열에서 2인자의 자리로, 총리에 상응하는 기능을 갖는다. 2007년에는 신성로마교회의 궁무처장에 임명됨으로써 그는 교회 재정과 재산을 책임지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바티칸 국무원장이 되기 전 베르토네는 교회에 대한 외부의 공격으로 간주되는 사안들, 특히 언론매체과 대중문화에 대해 반박했다. 예를 들어 2005년 댄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소설인 〈다빈치 코드 Da Vinci Code〉(2003)를 '거짓말'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이 책은 예수가 십자가 처형 후 생존했으며 마리아 막달레나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었으나 바티칸 교황청이 이 이야기를 조작했다는 설을 통속소설로 만든 것이었다.
바티칸 교황청의 국무위원으로서 그는 언론매체와 세속의 교회에 대한 비판에 대해 계속 대응했다. 그는 재임 기간 중 몇몇 논란에 휘말렸다. 재임 후 그의 첫 임무는 그 며칠 전 베네딕토 교황이 독일에서 언급한 발언을 무마하는 일이었다. 이슬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교황의 발언을 예언자 마호메트에 대해 비판적이고 이슬람 세계에 몰이해한 것으로 해석했으며, 비난 여론이 급속히 불거졌기 때문이었다.
몇 년 후 베르토네는, 로마 가톨릭 교도들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및 구소련의 일원이었던 공화국 내에서 정교회 교도들을 개종시키고 있다는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 알렉세이 2세의 항의에 반박했다. 2007년 그는 교황 피우스 12세가 아돌프 히틀러에게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홀로코스트 시기에 고통 받고 죽어간 유태인들을 도우려는 중재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 격하게 비난했다. 그 해 그는 교회의 성 추문을 다룬 언론매체들을 부정적이고 편파적이라며 맹비난하기도 했다.
2010년 아일랜드·오스트리아·독일에서 수십 년간 교구주민들, 특히 어린이들을 상대로 일어난 성추행 보고가 드러난 후 로마 가톨릭 사제들의 독신생활 전통에 대한 재고가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베르토네는 사제들의 독신생활을 옹호할 뿐만 아니라 소아성도착증을 남성간의 동성애와 관련시키는 듯 해석되는 발언을 하여 큰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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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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