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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이탈리아 남동부 타란토 주, 살렌티나 반도 아랫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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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197,178명 (2018 추계) |
면적 | 249.86㎢ |
대륙 | 유럽 |
국가 | 이탈리아 |
요약
이탈리아 남동부 풀리아 지방 타란토 주의 주도.
(그). Taras. (라). Tarentum.
타란토 만의 북부 내해(마레그란데)에 있는 살렌티나 반도 아랫부분에 있다. 구시가지는 마레그란데와 안쪽의 항구(마레피콜로) 사이의 작은 섬 위에 있으며, 신시가지는 인접한 본토에 있다.
BC 8세기(BC 706년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그보다 더 빠를 것으로 여겨짐)에 스파르타와 라코니아로부터 온 그리스 이주민들이 타라스 강가(지금의 타라 강)에 있던 메사피족의 타라스 마을을 정복하여, 마레피콜로와 마레그란데 사이의 반도(1480년 운하로 인해 분할됨) 위에 새로운 타라스를 건설했다. 타라스는 곧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지들인 마그나그라이키아의 주요도시가 되었으며, 주민들은 다른 여러 해안도시들을 세웠다.
BC 4세기에 위대한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아르키타스의 통치를 받으면서 군사력과 번영의 절정을 누렸으나 그가 죽고 나서는 일련의 전쟁을 겪었으며, BC 272년 드디어 로마에게 항복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중에는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에게 넘어갔으며, BC 209년 로마인들이 다시 점령하여 약탈했다. 비록 나중에 특권의 대부분을 되찾기는 했으나 로마 제국 점령하에서 로마령 타렌툼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쇠퇴해갔다.
6~10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는 고트족·비잔틴인·롬바르드족·아랍인 들의 손에 차례로 넘어갔다. 927년 사라센족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967년 비잔틴 황제 니케포루스 2세에 의해 재건되었고, 1063년에는 노르만족 로베르 기스카르에게 점령되었다. 로베르의 아들인 보에몽 1세는 타란토 군주가 되었으며, 도시는 수많은 십자군들의 출발지 역할을 했다. 노르만족, 앙주 왕가, 나폴리의 아라곤 왕국의 일부로서 도시는 16, 17세기에 투르크인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다.
나폴레옹 전쟁 동안 프랑스 해군기지로 사용되었고 1815년 양 시칠리아 왕국에 반환되어 1860년 양 시칠리아 왕국이 이탈리아에 통합될 때까지 그 소유가 되었다. 제1·2차 세계대전중에는 이탈리아 해군의 주요요새였기 때문에 1940년 영국 함재기의 집중적이고 효과적인 폭격을 받았으며, 1943년 9월 9일 영국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그리스 도시국가인 타라스의 면적을 고려해볼 때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건물유적만이 발견되었다. 수많은 그리스 시대 무덤에서 귀중한 수입 그리스 화병과 토산(土産) 화병이 출토되었으며, 아폴론 신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아폴론의 작은 조상이 수백 개나 발견되었다. 지역 공예가가 만든 많은 고대 양각 세공품은 대부분 타란토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잘 알려진 로마 시대 유적으로는 대규모의 공중목욕탕과 원형 경기장, 모자이크 바닥, 집, 그리고 많은 화장터와 분묘 등이 있다. 구시가지(치타베키아)는 내·외 항구 사이의 섬에 있는 '타라스의 아크로폴리스' 자리에 있으며, 여기에는 아라곤인의 성(1480, 나중에 증축됨), 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카탈도 대성당(바로크 양식 정면이 있음), 웅장한 현관과 장미창이 있는 산도메니코마조레 교회(1302) 등이 있다.
남동부의 신시가지(치타누오바)에는 병기창(1803), 관청, 기상대·지구물리학관측소(1905), 국립박물관, 국립해양생물학연구소(1931)가 있다. 북서부의 보르고는 산업지역이다. 병기창과 조선소를 갖춘 중요한 해군기지인 이곳에 유럽 석탄철강공동체(ECSC)의 제철·제강 공장이 있다. 다른 산업으로는 주변의 비옥한 평야로부터 나온 생산물을 가공하는 통조림제조업과 화학약품·직물·시멘트 제조업 등이 있다.
마레피콜로에서 굴과 홍합을 양식하고 있으며, 썰물 때는 고기를 잡는다. 상업 중심지로서 브린디시·메타폰토·바리 등지와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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