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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65. 12. 30, 인도 봄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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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36. 1. 18, 영국 런던 |
국적 | 영국 |
요약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찬양, 인도와 미얀마의 영국 군인들을 다룬 이야기·시·동화 등으로 유명하다. 1907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화가이며 학자였던 아버지 존 록우드 키플링은 러호 미술관 관장이었는데, 아들의 소설 〈킴〉 첫장에서 이 '놀라운 집'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어머니는 앨리스 맥도널드였는데, 두 이모는 각각 19세기의 유명한 화가 에드워드 번존스 경과 에드워드 포인터 경의 아내가 되었으며, 또다른 이모는 앨프레드 볼드윈과 결혼하여 뒷날 총리가 된 스탠리 볼드윈을 낳았다. 이러한 인척관계는 러디어드 키플링에게 평생 영향을 주었다. 키플링은 모든 영국인, 더 넓게는 모든 백인이 미개한 세계의 야만적인 원주민들에게 유럽 문명을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키플링의 사상은 당대의 자유주의적인 사고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점점 고립되었다. 영국 시민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명예인 메리트 훈장을 2차례나 거절했다.
러디어드 키플링은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찬양, 인도와 미얀마의 영국 군인들을 다룬 이야기·시·동화 등으로 유명하다.
1907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화가이며 학자였던 아버지 존 록우드 키플링은 러호 미술관 관장이었는데, 아들의 소설 〈킴 Kim〉 첫장에서 이 '놀라운 집'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어머니는 앨리스 맥도널드였는데, 두 이모는 각각 19세기의 유명한 화가 에드워드 번존스 경과 에드워드 포인터 경의 아내가 되었으며, 또다른 이모는 앨프레드 볼드윈과 결혼하여 뒷날 총리가 된 스탠리 볼드윈을 낳았다.
이러한 인척관계는 러디어드 키플링에게 평생 영향을 주었다.
러디어드 키플링은 어린시절의 대부분을 불행하게 보냈다. 부모는 키플링이 6세 때 영국으로 데려가 5년 동안 사우스시의 한 가정에 양자로 맡겼다. 그때의 공포는 〈음매 음매, 검은 양 Baa Baa, Black Sheep〉(1888)이라는 이야기에 묘사되어 있다.
그뒤 데번 북부 웨스트워드 호에 있는 유나이티드서비시스대학에 들어갔는데, 이 학교는 학비가 싸고 수준이 낮은 신설 기숙학교였다. 이 학교의 기억은 평생 러디어드 키플링을 따라다녔지만, 〈스탤키사 Stalky Co〉(1899) 및 이와 연관된 작품에서는 이 학교를 영국 교육의 지고한 목표를 달성한 무법의 낙원으로 미화했다. 스탤키 무용담은 키플링의 상상력이 이루어낸 최고의 업적 가운데 하나이다.
1882년 러디어드 키플링은 인도로 돌아가 7년 동안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러디어드 키플링의 부모는 요직에 있지 않았지만 인도에 거주하는 영국인 중 최상층에 속했기 때문에, 그는 이 계층의 사람들을 잘 알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관심과 애정을 느꼈던 인도 본국인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도 예민하게 관찰했다. 키플링은 소속된 신문에 짤막한 산문과 가벼운 시를 실었다. 1886년 〈부문별 노래 Departmental Ditties〉, 1888년 〈옛날부터 전해오는 소박한 이야기 Plain Tales from the Hills〉를 출판했으며, 1887~89년에는 종이표지로 된 단편집 6권을 펴냈다.
1889년 영국으로 돌아온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당대 최고의 산문작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1892년 〈막사의 담시 Barrack-Room Ballads〉를 발표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는데, 영국에서 바이런 이후 그처럼 빨리 명성을 얻은 시인은 없었다. 계관시인 앨프레드 테니슨 경이 1892년에 죽자 러디어드 키플링은 그의 뒤를 이어 대중의 존경을 받았다.
경박해서 실패작이 된 로맨스 〈놀래카 The Naulahka〉(1892)를 함께 쓴 미국의 출판업자이며 작가인 울콧 밸러스티어의 누이 캐롤라인과 1892년 결혼했다.
아내와 미국으로 가서 버몬트 주에 있던 아내 소유의 집에서 살았으나, 이웃 사람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미국생활에 적응할 수 없었는지 아니면 그럴 마음이 없었는지 영국으로 돌아와버린 러디어드 키플링은 미국인들이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에 사는 동안 눈이 멀게 되어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으로부터 버림받는 한 화가의 이야기인 〈꺼져버린 불빛 The Light That Failed〉(1890), 대담한 느낌은 있으나 묘사가 지나쳐 실패작으로 끝난 〈용기있는 지휘자 Captains Courageous〉(1897), 원래 동화책으로 씌어졌지만 고전으로도 손색이 없는 〈킴〉, 문체가 뛰어나고 이야기가 재미있기는 하지만 러디어드 키플링이 균형잡히고 일관성 있는 장편소설은 잘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정글북 The Jungle Books〉(1894, 1895) 등을 출판했다.
1902년 서식스 주 버워시에 집을 사서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영국의 역사를 단순하게 극화시킨 작품이면서도 러디어드 키플링의 심오한 직관을 담은 두 작품 〈푸크 언덕의 요정 Puck of Pook's Hill〉(1906)·〈보상과 요정 Rewards and Fairies〉(1910)을 비롯한 대부분의 후기 작품은 서식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키플링이 많은 시간을 보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최대의 다이아몬드 광산 소유주이면서 정치가인 세실 로즈로부터 집을 선사받았다.
이러한 교류를 통해 러디어드 키플링은 제국주의를 신봉하게 되었고, 이 태도는 해가 갈수록 더욱 강해졌다. 키플링은 모든 영국인, 더 넓게는 모든 백인이 미개한 세계의 야만적인 원주민들에게 유럽 문명을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키플링의 사상은 당대의 자유주의적인 사고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점점 고립되었다. 영국 시민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명예인 메리트 훈장을 2차례나 거절했으며, 1895년 계관시인 지위가 주어질 경우 거절할 뜻을 비추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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