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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515/20경, 프랑스 투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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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572, 파리 |
국적 | 프랑스 |
요약 프랑스의 화가.
발루아 왕가의 궁정 사회를 생생하게 그린 불멸의 초상화 작품들로 유명하다. 장 클루에의 아들로, 아버지의 별칭인 '자네'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는데, 그로 인해 이 두 화가의 작품들은 그뒤 계속 혼동되었다. 그는 일찍이 1536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일했으며, 1540년 아버지를 대신해 프랑수아 1세의 공식 화가가 되었다.
그뒤 앙리 2세, 프랑수아 2세, 샤를 9세의 화가로 일했다. 그는 대규모 화실을 운영했는데, 세밀화가, 에나멜 디자이너, 장식미술가 등이 그의 계획을 진행시켰다. 그는 초상화 외에도 누드 〈푸아티에의 디아나 Diane de Poitiers〉(워싱턴 D. C. 국립미술관)와 연극 장면을 그렸는데 〈코메디아 델아르테의 장면 Scene of the Commedia dell'Arte〉과 몇몇 판화들이 있다. 그는 풍속적인 주제를 그렸으며, 또한 프랑스 왕들의 장례식과 개선식에 쓰는 장식물 제작을 감독했다.
대체로 그의 작품은 서명이 있는 그림들인 〈푸아티에의 디아나〉·〈피에르 퀴트의 초상 Portrait of Pierre Quthe〉(1562, 파리 루브르 박물관) 및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 〈샤를 9세의 전신 초상 Portrait of Charles Ⅸ, Full-Length〉(1569경, 파리 루브르 박물관) 등을 기초로 하여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전문가들이 그가 마지막 작품을 위해 그렸던 예비 드로잉들을 그의 것으로 확인함으로써, 그의 작품 목록에 50점의 초상소묘와 프랑수아의 채색 초상화 여러 점이 추가되었다.
프랑수아 클루에는 대표적인 르네상스 화가로서 인문주의 서클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며, 피에르 드 롱사르, 조아생 뒤 벨레 등 당대의 많은 시인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초상화가로서 아버지만큼 사려 깊지는 않았지만 순간적인 표정을 보다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의 드로잉은 거의 정확한 묘사와 세련된 양식화, 선명한 입체감으로 프랑스 르네상스 양식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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