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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485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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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540경, 파리 |
국적 | 프랑스 |
요약
르네상스 시대의 초상화가.
별칭은 Janet, Jehannet.
통찰력이 뛰어나고 섬세한 성격 묘사로 유명하다. 생애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살았지만, 기록에 따르면 태생은 프랑스인이 아니었으며 귀화하지도 않았다. 일찍이 1516년에 프랑수아 1세를 섬기는 주요궁정화가가 되었으며, 1523년부터는 궁내관에 임명되어 당대의 가장 저명한 시인과 학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수와 사회적 지위를 누렸다.
1520년대초에는 투르에서 살았으며 1529년부터 파리에서 살았다. 초상화를 주로 그렸지만, 적어도 초기에는 종교적인 주제의 그림들인 〈성 히에로니무스 St. Jerome〉(1522)와 〈4명의 복음서 저자 Four Evangelists〉(1523)를 위한 스케치도 그렸다. 최근까지 클루에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작품으로는 1514~40년에 프랑스 궁정의 인물들을 그린 약 130점의 밑그림(샹티이의 콩데 박물관과 파리 국립도서관) 및 그것들을 바탕으로 한 세밀화와 유화들이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장 클루에의 서명이 들어 있거나 그의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전혀 없다. 결국 그것들을 클루에의 것으로 여기는 견해는 단지 가설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록이 충실한 〈기욤 뷔데의 초상화 Portrait of Guillaume Budé〉(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가 발견되어 복원되면서 그의 미술의 특징들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뷔데는 장 클루에가 자기 초상화를 그렸다고 1536년경 진술했다. 이 그림의 밑그림은 샹티이 콩데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다른 소묘들과 똑같은 솜씨로 그려졌기 때문에 전술한 모든 작품들을 장 클루에의 것으로 여기는 견해가 어느 정도 입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초상화들에서 모델들의 손 모양은 서로 상당히 다른데, 아마 클루에의 공방 도제들이 그것들을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들의 대다수는 클루에가 모델들의 심리적인 특성 묘사에서 날카롭고 섬세한 16세기의 가장 뛰어난 초상화가들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소묘들은 단순하고 대담하며 섬세한 반면, 그의 채색화들은 색채가 신선하고 형태 묘사가 부드러우며 섬세하다.
그는 기본적으로 플랑드르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그는 아마 브뤼셀이나 옛 프랑스-플랑드르의 발랑시엔 지역 출신인 것으로 생각됨), 그의 초상화들에서 볼 수 있는 유연한 선묘와 차분한 입체감, 인물 성격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 등은 전형적인 프랑스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젊은시절에 옛 프랑스의 초상화 전통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그의 장엄한 구도는 안드레아 솔라리가 프랑스에 들여온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의 초상화 양식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클루에의 몇몇 초상화들은 또한 홀바인의 화풍과 유사한 특성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홀바인은 거꾸로 클루에에게 유색 초크나 파스텔로 초상 소묘를 그리는 기법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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