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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70. 8. 1, 버지니아 캐롤라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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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38. 9. 1, 미국 미주리 세인트루이스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탐험가.
인디언들로부터의 위협을 극복하고 메리웨더 루이스와 함께 태평양 연안의 북서지역까지 이르는 장대한 탐험(1804~06)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뒤에는 미주리 준주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 독립전쟁 때의 유명한 장군인 조지 로저스 클라크의 동생으로 1789년 군대에 들어가 몇 차례 인디언과의 전투에 참가했다. 그중에는 북서부 인디언 동맹의 위협을 종결시킨 폴런팀버스 전투(1794)도 있었다. 1803년 미국이 루이지애나를 매입한 직후 그는 방대한 미개척지인 북서부지방에 대한 대규모의 탐험대를 함께 이끌자는 루이스 대위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루이스와 클라크의 탐험대는 세인트루이스를 출발해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3년에 걸친 여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 두 사람은 서로 협력하여 지도력을 발휘함으로써 탐험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특히 클라크는 굽힐 줄 모르는 성격과 임기응변으로 탐험대가 몇 차례 위기에 직면했을 때마다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는 탐험중 지도를 만들었으며, 화가로서의 소질이 있어 탐험을 하며 관찰한 동물들의 모습을 매우 상세하게 그리기도 했다.
이 탐험이 끝난 뒤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클라크에게 650㏊에 달하는 정부 소유지를 주고, 루이지애나 준주(지금의 미주리 준주) 민병대의 준장이자 인디언 문제를 처리하는 관리자로 임명해 세인트루이스에서 근무하게 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이 자리에 있었으며, 1813년부터는 미주리 준주 주지사로 일했고, 1824~25년에는 일리노이·미주리·아칸소의 국유지 감독관을 지냈다. 줄곧 인디언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연방정부에 대해 인디언들을 정의롭고 인간적으로 다루어줄 것을 여러 차례 호소했다.→ 루이스와 클라크의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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