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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피렌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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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617. 4. 24, 파리 |
국적 | 이탈리아/프랑스 |
요약
루이 13세(1610~43 재위) 통치 초기 7년 동안 프랑스 정부를 지배했던 이탈리아 출신의 정치가.
Marchal d'Ancre라고도 함.
피렌체에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마리 드 메디치(역사적으로는 프랑스 왕비 마리 드 메디시스로 알려져 있음)가 프랑스 왕 앙리 4세(1589~1610 재위)와 결혼하기 위해 이탈리아를 떠나기 직전 그녀의 수행원으로 들어갔다. 1601년 왕비와 함께 자란 도리 갈리가이와 결혼했다. 왕비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너무나 막강해 앙리 4세는 몇 차례나 그를 궁정에서 추방시키라고 위협했다.
앙리 4세가 암살된 후, 마리 드 메디시스가 어린 아들 루이 13세를 대신해서 섭정을 했고 당크르 후작이 된 콘치니와 그의 아내는 마리의 주요고문으로 행세했다. 그들은 루이에게 모욕을 가했으며, 재산을 끌어모았다.
그는 전투에 한번도 참가한 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1613년 프랑스 육군원수로 임명되었다. 그의 평판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이용, 대귀족들은 콩데 공 부르봉의 앙리 2세의 지도 아래 2차례 반란을 일으켰으나 1616년 콘치니는 콩데 공을 체포했다. 나중에 추기경이 된 리슐리외 같은 유능한 행정가들을 정부에 영입해 한때 자신의 위치를 강화하기도 했으나, 1617년 귀족들은 다시 반란을 일으키겠다고 위협했다.
이번에는 루이 13세의 총애를 받던 륀의 샤를 드 달베르가 반 콘치니 음모를 주동했다. 그는 루브르 강 가동교에서 왕실 호위대에게 저격당했으며, 군중들은 그의 시체를 갈기갈기 찢었다. 그의 아내는 마법행위로 사형을 선고받고 1617년 7월 8일 참수당해 불태워졌다. H. 달메라스의 〈당크르 원수 콘치니 Concini, maréchal d'Ancre〉가 1928년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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