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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서울특별시에서 발행되는 영자일간신문(→ 대한민국).
6·25전쟁 중인 1950년 11월 1일, 공보처장직을 맡았던 김활란(金活蘭)이 참전 중인 국제연합(UN)군 장병들에게 전쟁 상황을 신속하게 알리고, 나아가 전세계에 한국의 실정을 바로 알리려는 목적으로 창간했다.
김활란이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을 지낸 관계로 이 신문에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초대 사장 겸 발행인은 김상용, 주필은 조용만, 편집국장은 이석곤이었고, 편집위원으로 피천득·주요섭·이무영 등이 참여했다. 발행소는 서울 중구 태평로1가에 있었다. 타블로이드판 2면으로 출발하여 1961년 12월 대판 2면, 1962년 10월 대판 4면, 1993년 대판 12면에 한글 해설판인 타블로이드판 4면, 2005년 대판 20면에 한글 해설판 4면으로 늘렸다. 창간 후 1년 6개월 동안 정부가 신문 전체를 구독하는 형식으로 보조했으나, 1952년 5월 이승만 정부의 독재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싣자 지원을 중단하고 신문발행 허가권을 반환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이에 공보처장직을 사임하고 1951년 11월부터 2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활란은 허가권 반환을 거부하는 한편 1952년 10월 10일 주식회사로 개편하고 순수 민간지로 독립했다. 당시 〈조선일보〉 사장이던 장기영이 〈코리아 타임스〉 감사로 임명되었다가 〈코리아 타임스〉가 재정난에 처하게 되자 1953년 11월 경영권을 넘겨받아 사장으로 취임했다.
1954년 6월 장기영이 〈한국일보〉를 창간함에 따라 〈코리아 타임스〉는 서울 중학동 한국일보사 사옥으로 옮겼으며, 이화여대 교수들 중심이던 편집진도 대폭 바뀌었다. 1958년 8월 10일자에 이라크 정변을 다룬 칼럼이 문제가 되어 필자인 장수영이 16일간 구속되고, 같은 해 9월 26일 당시 편집국장이던 최병우가 타이완 금문도 앞바다에서 순직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본사는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충무로 3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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