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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3세기에 이탈리아토스카나 콤파르티멘토에서 활동한 성인들.
Seven Servite Founders라고도 함.
1888년에 시성(諡聖)되었으며, 축일은 2월 17일이다.
성모의 종 수도회(聖母下服會 Ordo Fratrum Servorum Sanctae Mariae)를 세운 7명의 성인들(본필리오 모날리오, 알렉시오 팔코니에리, 요한 보나준타, 베네딕토 델란텔라, 바르톨로메오 아미데이, 제라도 소스테니, 리코베로 우구치오네)을 가리킨다.
하복회(下服會 Servites)라고도 부르는 성모의 종 수도회는 로마 가톨릭 탁발수도회로서 사도적 활동에 전념했다. 이 7명을 언급한 최초의 저서인 〈기원에 얽힌 전설들 Legenda de origine〉(저자는 1314~44년에 성모의 종 수도회 총장을 지낸 토디의 피에트로로 여겨짐)에 따르면, 이들은 피렌체 상인들로서 독신이거나 홀아비 또는 기혼자였다고 한다. 성모마리아회의 수사인 이들은 피렌체가 정치적인 격변기에 처해 있는데다 카타리파(선과 악이 서로 다른 두 조물주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 그리스도교 이단) 때문에 더욱 어지러웠던 시기에 '고행형제단'을 조직하여 공동으로 고행생활을 한 듯하다.
본필리오 모날리오의 주도하에 긴밀하게 결합된 이들은 성모 마리아에게 헌신했는데, 전승에 따르면 마리아가 환상 속에서 이 7명에게 나타나 속세를 떠나 은둔생활을 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이들은 주교 아르딩구스(아르딩고)에게 허락을 받은 뒤 1233년 피렌체 성문 밖으로 나가 주변의 카파조라는 마을에서 마리아에게 봉헌한 집을 거처로 정했다.
이곳에서 청빈·교제·선교 생활을 하다가, 더 엄격한 은둔생활을 위해 어느날 집을 떠나 피렌체에서 19㎞ 떨어진 몬테세나리오로 갔다. 그곳에서 외딴집을 짓고 방해받지 않는 고행생활을 계속하면서 훗날 그들의 수도회가 될 토대를 쌓았다. 15~16세기의 전설들에 따르면 1240년 4월 13일 마리아가 다시 환상 속에 나타나 자기를 섬기되, 검은 수사복을 입고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의 회칙을 채택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그뒤부터 이들은 성모 마리아의 종들로 알려졌다. 이들은 피렌체로 돌아와 산타마리아 디카파조(훗날의 산타안눈치아타)라는 성당을 세웠다. 본필리오 모날리오가 총장으로 선출되었고, 아르딩구스는 이 수도회를 승인했다.
〈기원에 얽힌 전설들〉에 따르면, 1244년 이들은 당시 피렌체에서 설교하던 도미니코 수도회 설교자이자 훗날 카타리파에게 살해당한 순교자 성 페트루스의 조언을 받고 기도한 뒤 아우구스티노의 회칙과 검은 수사복을 채택했는데, 이 수사복은 이 수도회의 독특한 복장이 되었다.
또한 이전부터 사람들이 자기들을 부를 때 쓰던 '성모의 종 수도회'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결정했다. 1256년 3월 23일 교황 알렉산데르 4세는 이 수도회를 공식 승인했다. 각 설립자의 정확한 생몰연대와 죽은 장소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16세기초부터 작성된 기록들은 본필리오 모날리오, 델란텔라, 그리고 팔코니에리의 성해들이 몬테세나리오에 묻혀 있다고 전한다. 1649년 몬테세나리오 부속경당의 본 제대를 개조할 때 7명의 성해들을 발견했고, 이 성해들은 여러 차례 옮긴 끝에 오늘날에는 몬테세나리오에 있는 7인의 설립자 부속경당에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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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성모의 종 창설자 7성인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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