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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5. 9. 22, 뉴사우스웨일스 배서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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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1. 6. 13,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 |
국적 | 오스트레일리아 |
요약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가·총리(1945~49)·노동당수(1945~51).
총리로 재직하는 동안 은행개혁·사회보장·이민확대정책을 실시했고 전후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제성장을 촉진시켰다.
젊은 시절 철도기사로 일했던 치플리는 뉴사우스웨일스에 있는 철도노동조합에서 활동했다. 1928~31년 의회에 진출했으나 재선에 실패한 이후 여러 공공활동에 열중했다. 1935~37년 왕립은행위원회에 참여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그의 재정정책의 기초가 되었다.
1941년 존 커틴의 주도 아래 노동당이 다시 정권을 장악했을 때 치플리는 연방 재무부장관으로 임명되어 연방의 징세권을 확대시키는 등 경제에 대한 엄격한 전시통제를 실시했다. 1945년 커틴의 뒤를 이어 총리로 취임한 그는 주립은행과 민간은행의 상호관계 및 연방정부를 통제할 수 있는 입법안을 지지했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의 국제항공사인 콴타스사를 국유화하고 정부 소유의 국내항공인 트랜스오스트레일리아항공을 설립했다. 그밖에도 그는 공공보건법과 노동중재법을 제정했고, 농업 및 산업 개발을 촉진했으며, 대학원 연구의 중핵기관으로 캔버라에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교를 설립했다.
1948~49년 치플리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지금의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에 대항해 싸우는 인도네시아인들을 지지함으로써 전통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가 견지해왔던 아시아 국가에 대한 적대정책을 변경시켰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 공산당에 대해서는 온건한 태도를 취했다. 민간은행을 국유화하려는 그의 시도는 실패했는데, 이러한 그의 정책들은 1949년 선거에서 패배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치플리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죽을 때까지 야당인 노동당의 당수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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