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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종술

다른 표기 언어 治腫術

요약 전근대사회에 종기를 치료하던 방법.

종기는 자주 발생하면서도 목숨까지 앗아가는 무서운 질병이었기 때문에 의학의 한 분과로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따라서 종기의 치료는 일찍이 치종의(治腫醫)라는 독립된 분과를 이루기도 했다. 〈경국대전 經國大典〉에는 비록 의학서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의원이라 하더라도 창종(瘡腫)과 여러 악창(惡瘡)을 잘 치료한 자는 해마다 1명씩 치종의로 등용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1603년(선조 36) 종기만 전문으로 치료하기 위한 치종청(治腫廳)이라는 기관이 궁 안에 따로 설치되었다. 이는 후에 전의감(典醫監)에 병합되었는데, 관원으로 교수 1명, 침의(鍼醫) 3명, 전함(前銜) 10명, 생도 10명이 있었다. 조선 중기에는 치종청의 독립과 함께 종기 치료술에서도 커다란 발전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1559년(명종 14)에 나온 임언국(任彦國)의 〈치종비방 治腫祕方〉을 들 수 있다. 이 책은 여러 종기의 증상과 치료법에 대해 논했는데, 특히 소금물 목욕법과 같은 외용적(外用的) 요법들이 두드러진다.

임언국의 종기 치료술은 종래와 같이 침으로 단순히 종창(腫瘡) 부위를 째는 절개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외과적 수법을 연상시키는 관혈적(觀血的) 절개요법이 응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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