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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파리1호분

다른 표기 언어 眞坡里一號墳

요약 평양특별시 역포구역 무진리 왕릉동(옛 지명은 평남 중화군 동두면 진파리)에 있는 고구려 벽화고분.

부근에 전동명왕릉으로 일컫는 진파리10호분이 있다. 1941년 일본인들에 의해 발굴·조사되었으며, 1963년 북한학자들에 의해 다시 발굴되었다. 진파리4호분과 함께 고구려와 중국 남조 사이의 문화교류를 확인시켜주는 고분벽화로 잘 알려진 무덤이다.

1941년 조사 당시 묘실 안에서 관모의 일부로 보이는 금동투조금구가 출토되었다. 금구 중심에는 원에 둘러싸인 삼족오가, 그 둘레에는 3마리의 용이 투조되어 있어 무덤 주인의 신분이 왕족급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덤은 널길[羨道]과 장방형 널방[玄室]으로 이루어진 외방[單室]의 돌방봉토무덤[石室封土墳]으로 묘실의 방향은 남향이다.

방대형인 봉토의 지름은 약 30m, 정상부 높이는 7m이다. 널길은 길이 3.5m, 너비 1.5m이며, 널방은 길이 3.4m, 너비 2.5m, 높이 2.54m이다. 묘실은 잘 다듬어진 판석으로 축조되었으며 천장구조는 2단의 평행굄 위에 1단의 3각굄을 얹은 평행3각굄이다. 묘실 안에는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벽화를 그렸다. 벽화의 주제는 사신이다. 널길 천장에서는 벽화가 발견되지 않았다.

벽화는 묵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광물성 안료로 채색했는데, 선의 강약과 색의 농담을 표현 대상에 따라 달리 구사하는 세련된 회화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색채의 주조는 붉은색·노란색·녹색·자주색·검은색이다. 널길의 좌우벽에는 갈래창을 든 문지기 역사를 그렸는데, 역사는 머리 뒤에 두광이 표현되어 있고 연화반 위에 서 있어 불교의 사천왕을 연상시킨다. 같은 유형의 문지기 역사는 통구5호분의 널길 벽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널방동벽에는 북쪽을 향해 크게 내닫는 청룡을 묘사했으며, 배경 공간에는 같은 방향으로 빠르게 흐르는 구름과 바람에 휘날리는 인동연꽃, 구름을 타고 나르는 서조 등을 그렸다. 그러나 진파리4호분에서와 같은 천인은 표현되지 않았다. 서벽에는 포효하는 백호를 그렸으며 배경은 동벽과 같다. 청룡과 백호의 꼬리는 계단식으로 묘사되고 목은 가늘게 표현되어 자체의 강한 운동성보다는 흐르는 구름을 타고 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남벽에는 묘실문 좌우로 암수 주작 1쌍을 그렸다. 두 주작의 꼬리는 허공을 향해 힘있게 뻗어 있으며 같은 방향으로 동서벽에서와 같은 구름이 빠르게 흐르고 있다.

북벽의 한가운데에는 현무를 그렸는데 동서벽의 청룡·백호에 비해 표현이 고졸하여 거북의 머리와 다리는 자연세계의 네 발 짐승을 연상시킨다. 현무의 좌우로는 암산과 큰 소나무를 그렸다. 배경에는 흐르는 구름과 휘날리는 인동연꽃,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용 등을 묘사했다. 천장에는 구름무늬와 인동덩굴무늬, 인동연꽃무늬 등을 그려넣었다. 천장돌의 네 모서리에는 인동연꽃을 묘사하고 가운데에는 동서로 나란히 해와 달을 그렸다. 해는 힘있게 회전하는 원안의 삼족오로, 달은 같은 형태의 원안에 계수나무·옥토끼·두꺼비로 나타냈다.

진파리1호분은 묘실구조, 벽화의 표현기법 및 구성방식 등이 진파리4호분과 거의 같으나, 필선의 운용, 세부표현기법 등이 진파리4호분벽화보다 세련되었으며 널방벽에서 차지하는 사신의 비중이 보다 높다. 따라서 무덤의 축조와 벽화제작연대는 진파리4호분보다 늦은 6세기 후반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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