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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년 중국 학자 장형은 지진이 발생한 것을 기록하는 감진계를 발명했다. 이 장치에 대해 기술된 것을 보면, 이 기구는 원기둥 모양으로 각각의 입에 구슬을 물고 있는 8마리 용의 머리가 원기둥 상부 둘레에 배열되어 있으며, 하부 둘레에는 8마리의 개구리가 용의 머리 바로 밑에 자리잡고 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구슬 중의 하나가 용의 입에서 떨어져 소리를 내면서 개구리의 입으로 들어간다. 한편 17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분무 방식의 장치가 개발되었다. 후에는 물을 가득 채운 용기와 그 이후에 수은을 채운 용기가 지진과 미동을 기록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1855년 이탈리아의 루이지 팔미에리는 수은이 차 있고 둘레의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배열된 몇 개의 U자관으로 구성된 진동계를 고안했다. 지반이 흔들렸을 때 수은의 운동은 시계를 멈추게 하는 전기적 접촉을 일으키고, 동시에 수은 표면의 흔들림을 기록하는 원통이 돌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 장치는 지진이 발생한 시각과 지반운동의 상대적 강도 및 지속시간을 알려준다.
지반운동을 기록함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지반이 움직일 때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지점을 찾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진자가 이용되었다. 가장 단순한 형태는 무거운 질량을 갖는 단순진자를 고정된 지점에서 늘어뜨려진 철사나 막대에 시계처럼 매다는 것이다. 다른 형태로는 무거운 질량체를 아랫부분이 고정되어 있는 수직막대의 상부에 매다는 역립진자와 한 끝에 질량체가 달린 막대를 두 지점에 매달아 수직면 대신 거의 수평면 방향으로 흔들리게 하는 수평진자가 있다.
1840년 단순진자로 만들어진 진동계가 스코틀랜드 퍼스셔의 콤리 근처에 설치되었다. 1841년에는 역립진자로 된 진동계가 국부 지진을 기록하기 위해 콤리 근처의 6개 지점에 설치되었다. 지진계는 일본에서 활동한 영국 과학자 제임스 앨프리드 유잉, 토머스 그레이와 존 밀른이 지진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 때인 1880년부터 급속히 발달했다. 그해 도쿄[東京] 근처 요코하마[橫浜]에서 격심한 지진이 발생한 후 그들은 일본지진학회를 구성했다. 이 학회의 후원 아래 오늘날 지진계의 모체가 된 다양한 장치들이 발명되었다. 이 기간 동안 설계된 장치들 중의 하나가 지금도 유명한 밀른의 수평진자지진계이다.
진자(M)가 달려 있는 받침대(B)가 회전축(P)에 수평으로 매달려 있고 비단실(T)이 회전축 위의 지점에 고정되어 있다. 받침대에 평행한 방향으로 잘려진 좁은 틈새가 있는 얇은 판(C)이 받침대의 끝에 붙어 있다. 위의 판에 대해 직각방향으로 틈이 나 있는 비슷한 판이 기록 원통(D)이 들어 있는 상자 위에 고정되어 있다. 기름등에서 나온 광선이 두 틈새를 통과해 기록 원통에 감겨 있는 광감 기록용지(브로마이드 인화지)에 작은 광점을 형성한다. 밀른은 일본에서 이 지진계를 이용해 성공적으로 몇몇 지진을 기록했다. 그후 그는 영국에서 이런 장치를 이용해 작은 규모의 관측망을 설립했다.
수평진자지진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크게 개량되었다. 미국에서 장주기파를 기록하기 위해 개발된 프레스-유잉 지진계는 전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지진계는 밀른형 진자를 사용하고 있으나 마찰저항을 피하기 위해 진자를 지탱하는 회전축을 탄성선으로 대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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