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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0. 2. 12(구력 1.31), 러시아 모스크바 근처 세레브랴니예프루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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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82. 3. 18 |
국적 | 소련 |
요약 소련의 장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지금의 볼고그라드) 전투에서 수비군 사령관으로 활약했고, 히틀러의 군대를 격퇴하는 작전에 참가했으며, 소련군의 베를린 진격을 지휘했다. 후에 원수로 승진되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추이코프는 12세 때부터 견습 기계공으로 일했으며,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후 18세의 나이로 적군(赤軍)에 입대했다.
차리친(후에 스탈린그라드로 개칭되었음)에서 일어난 내전에 투입되어 최초의 전투 경험을 쌓았으며, 이듬해인 1919년에는 공산당원이자 한 연대의 지휘관이 되었다. 1925년 M.V. 프룬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의 폴란드 침공(1939)과 러시아-핀란드 전쟁(1939~40)에 참가했으며, 중국에서 대사관부 무관 근무를 마친 직후 스탈린그라드로 소환되어 이 도시의 방어를 지휘하게 되었다. 1942년 8월 독일측은 700기 이상의 비행기, 500대의 전차, 1,000문의 박격포, 1,200문의 직사포와 함께 최고 22개 사단의 병력을 투입하여 스탈린그라드에 대한 직접 공격에 나섰다. 이에 대해 추이코프는 "우리는 이 도시와 운명을 같이 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시내와 시 주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총검과 수류탄에 의한 육박전이 벌어졌으며, 이 회전이 끝날 때까지 최소한 30만 명의 독일군과 40만 명의 소련군 사상자가 생겼다. 11월이 되자 소련군은 반격을 시작했고, 연말에는 공세로 전환했다. 추이코프 장군은 그의 병력을 이끌고 도네츠 분지로 나아갔으며, 이어 크림 반도를 거쳐 벨라루스로 전진한 후 마침내 소련군의 베를린 진격의 선봉을 맡았다. 추이코프는 1945년 5월 1일 베를린에서 직접 독일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전후 그는 소련의 점령군과 함께 독일에 체류했으며(1945~53), 1949년부터 점령군 사령관직을 맡았다. 1953~60년에는 키예프 군관구 사령관을 역임했고, 그후로는 모스크바에서 군의 여러 요직을 거쳤다. 1952~61년에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후보위원을 지냈고, 1961년부터는 정위원으로 계속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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