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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스페인의 건축가 집안.
17세기말과 18세기초에 명성을 떨쳤으며 주요인물들은 바르셀로나의 제단화 제작자의 아들 3형제로 모두 같은 시기에 활약했다. 이들은 그들이 낳은 4명의 아들과 종종 함께 작업했다. 이 가문은 스페인의 후기 바로크 양식을 특징지었는데, '추리게라 양식'은 현란해 보이며 아주 세세한 곳까지 화려하게 장식한 건축양식을 뜻한다.
추리게라 가문의 서로 다른 성원의 작품을 낱낱이 식별하기란 무척 힘들다. 호세 베니토(1665~1725)는 가문의 우두머리로서 천성적으로 출중했던 건축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동생인 호아킨(1674~1720)은 살라망카 대성당(1714~24:1755년 이후 헐림)과 칼라트라바 학교(1717 착공, 살라망카)에 남긴 작품으로 유명하다. 막내 동생인 알베르토(1676~1750)는 살라망카의 멋있는 마요르 광장을 설계했다. 호세는 1670년대초 호아킨과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로 이주해 대대로 내려온 가업을 이어나갔다.
그는 1689년 카를로스 2세의 첫번째 왕비였던 오를레앙의 마리아 루이스의 무덤에 쓸 관대 디자인 공모에 당선되어 인정을 받았으며 1690년에는 펠리페 5세의 궁정건축가가 되었다. 그러나 같은 궁정 안의 경쟁자인 테오도로 아르데만스와 불화를 빚어 해임당한 뒤 살라망카로 갔다. 살라망카 대성당의 수석 장인이 된 그는 50여 년에 걸쳐 살라망카를 추리게라 양식의 도시로 바꾸어놓는 작업을 시작했다.
마드리드에서는 자신의 후원자인 은행가 후안 데 고예네체를 위해 대저택(1715:디에고 데 비야누에바가 1773년 신고전 양식으로 개조)을 설계했는데 오늘날 이 건물에는 산페르난도 아카데미가 들어서 있다. 또한 아란후에스 근처에 세운 신도시이며 유리공업 중심지인 누에보바스탄을 계획했다(1709~13).
호세의 형제들을 비롯해 이들의 제자들은 더욱 화려한 추리게라 양식을 창조하는 데 주된 역할을 했으나 원래 호세의 건축양식은 한결 억제된 듯한 느낌이 특징이며 안드레아 팔라디오와 후안 데 에레라의 영향을 보여준다. 그는 가문의 다른 건축가들과는 달리 지나친 회반죽 장식을 피함으로써 자기 작품의 조소성이 매몰되는 것을 막았는데 걸작 살라망카의 산에스테반 교회(1693)의 제단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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