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898, 서울 |
---|---|
사망 | 1969 |
국적 | 한국 |
요약 독립운동가·군인.
일명 용덕(容德:龍德). 호는 창석(滄石). 1910년 한일합병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16년 중국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에 입대했다. 1920년 중국 공군군관학교에 입학, 졸업 후 공군군관학교 교관, 수상비행대장, 공군지휘부 참모장, 공군기지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1922년 톈진[天津]에서 김원봉(金元鳳)을 만나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일제기관 파괴 및 일제고관 암살을 위한 폭탄 확보와 투탄 계획을 협의, 김상옥(金相玉)·김시현(金始顯) 등의 의거를 지원했다.
1930년대에는 한국과 중국의 항일연합전선 결성에 힘을 쏟는 한편, 조선민족혁명당과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 등에 참여했으나 사회주의자들의 세력이 커지자 상해임시정부와 가까워졌다.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중국군에 적을 둔 채 광복군총사령부 총무처장에 임명되었고, 1943년에는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여 중앙감찰위원에 선임되었다. 그뒤 1945년 8·15해방 때까지 광복군 참장(參將), 총사령부 참모처장으로 항일전선에 복무했다. 1946년에 귀국하여 한국항공건설협회 회장에 추대되었으며, 1948년 조선경비대 보병학교를 마치고 그해 6월 육군항공기지 부대장이 되었다.
그해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국방부차관에 임명되어 국방력 건설에 힘썼고, 다음해 공군을 육군으로부터 분리·독립시켰다. 1950년 6·25전쟁 직전 공군사관학교 교장에 임명되었고, 전쟁중 항공기지사령관·공군참모총장 등을 역임했다. 1954년 12월 현역에서 은퇴한 뒤 공군참모총장 고문을 지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수여되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