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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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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폭발로 일어난 방사능 누출 사건. 1986년 4월 26일 원자로의 시험 가동 과정에서의 안전절차 결여로 발생한 사고로, 50여 명이 목숨을 잃고 화재 진압과 복구에 동원되었던 20여만 명이 방사능에 피폭되었으며, 방사능 낙진이 전 유럽과 아시아 일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피해를 입었다. 체르노빌과 인접 도시 프리피야트 주민은 모두 피난하여 이후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대로 변했다. 여전히 발전소의 원자로가 남아 있으나 1986년 설치한 콘크리트구조물과 2016년 설치한 금속차폐시설로 방사능의 누출을 방지한 상태로 남아 있다.

개요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시 인근 원자력발전소의 폭발로 인한 방사능 누출 사건. 1983년 가동한 1,000MW 용량의 원자력발전소에서 1986년 4월 25일 기술자들이 안전장치를 해제한 채 원자로를 시험가동하다가 26일 새벽에 노심의 연쇄반응이 통제불능 상태에 이르면서 폭발했고, 잇달아 발생한 화재로 방사선 물질이 인근 지역으로 날아갔다. 이 사건으로 30명 이상이 사망했고, 200여 명이 방사능에 오염되었으며, 공장 주변 주민 13만 5천여 명이 피신하면서, 최악의 방사능 재해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Chernobyl nuclear power plant)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모습

ⓒ Jason Minshull / wikipedia | Public Domain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정식 명칭은 '레닌 공산주의 기념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였다. 이 발전소는 체르노빌 시에서 북서쪽으로 16㎞,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북쪽으로 104㎞ 떨어진 프리피야트 마을에 1971년에 착공하여 1983년까지 건설되었다. 흑연으로 원자력 반응을 감속제어하는 구형의 원자로 4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각 원자로는 1,000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당시 소련(소비에트 연방)에 속해있었으며, 사고가 일어난 4호기는 소련에서 개발한 흑연감속 비등경수 압력관형 원자로(RBMK, Reaktor Bolshoy Moshchnosti Kanalniy)로 1983년 운전을 시작했다. 이 원자로는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고, 감속제어를 위해 흑연을 사용하며, 냉각재로는 경수를 사용하는데, 운전 편의성이 높으나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결함이 있었다.

전개

1986년 4월 25~26일 체르노빌 기술자들은 원자로의 가동이 중단되었을 때 터빈이 관성으로 회전하여 만들어내는 전력의 양을 측정하기 위해 원자로를 4차례 시험가동했다. 그들은 시험가동중에 원자로의 출력이 떨어지자, 출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안전절차를 위반하고 원자로의 비상 냉각장치, 비상 원자로 운전중지 장치, 동력 규제장치 등을 잠그고 원자로를 7%의 동력으로 계속 움직이게 하면서 거의 모든 제어봉을 노심에서 끊었다.

4월 26일 오전 1시 24분, 제어봉이 없는 상태에서 노심의 연쇄반응은 마침내 통제 불가능 상태가 되었다. 정상치의 100배 가깝게 상승한 원자로 출력으로 냉각수가 끓어 증기압이 높아지면서 1차 폭발이 일어났고, 수증기와 흑연의 반응으로 수소가 발생하면서 2차 폭발이 발생했다. 폭발과 이에 따른 거대한 불덩이로 인해 원자로를 덮었던 두꺼운 강철·콘크리트 뚜껑이 날아갔다.

흑연 원자로 노심에서 발생한 연이은 화재 때문에 대량의 방사선 물질이 대기로 퍼져나갔고, 이 물질들은 공기 흐름에 의해 상당히 먼 곳까지 날아갔다. 원자로 건물의 화재는 몇 시간 후 진화되었지만, 소방대가 화재 진압을 위해 뿌린 물이 원자로 내부 물질과 반응하면서 이날 밤 9시 41분에 다시 대폭발을 일으켰다. 이후 물이 가져오는 예측 불가능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동원해서 납과 흙, 붕소 등을 뿌렸으나 연쇄 반응을 멈추는 데에 실패했다.

사고가 발생한 다음날인 4월 27일 인근 프리피야트 주민 3만여 명이 피난하기 시작했으며, 4월 28일 스웨덴 관측소는 대기의 방사능 수치가 매우 위험한 수준이라고 보고했고 소련정부에 해명을 촉구했다. 소련정부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일어났음을 인정했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방사능 노출로 야기된 위험성에 대한 국제적 항의가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방사능 낙진은 유럽 전역 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에서도 발견되었다. (→ 낙진).

4월 30일부터는 발전소 주변 30km 반경 안의 모든 주민이 피난하기 시작했다. 5월 4일 원자로 노심에서 새어나온 방사능과 방사열에 대한 견제장치를 작동했고 5월 6일 소련은 사고경위를 세계 언론에 발표하기 시작했다. 결국 3호기에 있던 액체질소를 4호기에 주입하면서 5월 9일에 이르러서야 완전 진화에 성공했다. 그해 말에는 두꺼운 콘크리트 속에 고농축 방사능 원자로 노심을 '매장'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결과와 영향

체르노빌 사고의 사망자는 50명이 넘었다. 그들중 2명은 폭발과 화재로, 나머지는 방사능 노출로 목숨을 잃었다. 200여 명 이상이 심각한 방사능병에 걸렸으며, 화재 진압과 발전소 해체 등의 작업에 동원되어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은 2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8t 정도의 방사능 물질이 대기 속으로 빠져나갔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투하했던 원자폭탄이 내뿜은 방사능 수치를 몇백 배 능가하는 것이었다. 이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벨라루스·우크라이나 등으로 퍼져나갔고 서쪽으로는 프랑스·이탈리아까지 흩어졌다.

이 사건은 체르노빌 공장 주변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공장 주변 32㎞ 내에 있는 토양과 지하수원이 방사능에 심하게 오염되었고, 주민 13만 5,000명이 공장 주변 780㎢ 밖으로 피신해야 했다. 체르노빌과 프리피야트는 방사능에 오염되어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가 되었다가, 2003년 체르노빌 복구 프로그램이 시행되면서 일부 관련자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벨로루시 등 인근 국가뿐 아니라, 영국과 스웨덴과 같이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도 이 때 유출된 방사능 물질이 발견되었으며, 이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암 환자가 급증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방사능에 피폭된 수만 명이 암과 같은 후유증으로 사망할 것이 예견되었다. 이 사고 때문에 소련의 원자력 발전계획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유럽 전역에서는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립에 대한 거센 저항이 일어났다.

현황

1986년 말 긴급하게 현장을 덮었던 시멘트 구조물의 수명이 다함에 따라, 방사선을 지속적으로 방출하고 있는 원자로를 폐기하는 방안이 지속적으로 논의되었다. 이에 따라 국제적 협력과 지원을 통해 2016년 11월 29일 콘크리트 구조물을 덮을 길이 162m, 높이 108m, 폭 257m의 아치형 거대한 금속 차폐시설을 완공, 현장에 설치해서 방사능의 추가 누출을 방지했다. 하지만 원자로의 본격적인 폐기 작업은 관련된 기술이 축적된 후인 몇십 년 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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