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954. 7. 28, 베네수엘라 사바네타 |
---|
요약 1999년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 된 뒤, ‘볼리바르 혁명’을 통해 빈민층을 위한 무상 교육, 주택 제공, 의료혜택 등의 정책을 펴나갔으며, 석유산업을 장악하는 등 혁명적인 정책으로 장기 집권을 유지했다. 베네수엘라 육군사관학교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해 낙하산 부대에 들어갔으며, 1990년 중령으로 진급했다.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의 사상에 매료된 우고 차베스는 카라카스의 시몬볼리바르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1992년 쿠데타 기도 이후 투옥되었다가 1994년 라파엘 칼데라 대통령이 차베스의 석방을 요구하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화해의 조치로 석방되어 정치무대에 복귀했다. 차베스는 석방되자마자 군의 지원을 받아 급진 좌파정당인 제5공화국운동을 창당했다. 차베스는 1998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뒤 1999년 2월 2일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취임했다. 과감한 정책으로 1999년 헌법을 개정하고 2000년, 2006년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차베스는 2007년에는 석유 부문, 2008년에는 통신, 전기, 제철, 시멘트 회사들을 국유화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우고 차베스는 어린시절부터 군에서 성공하겠다는 꿈을 키웠으며, 이후 베네수엘라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학 학위를 받았다. 1975년 차베스는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해 낙하산 부대에 들어갔으며, 1990년 중령으로 진급했다.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의 사상에 매료된 차베스는 카라카스의 시몬볼리바르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1992년 쿠데타 기도 이후 투옥되었다가 1994년 라파엘 칼데라 대통령이 우고 차베스의 석방을 요구하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화해의 조치로 석방되어 정치무대에 복귀했다. 차베스는 석방되자마자 군의 지원을 받아 급진 좌파정당인 제5공화국운동(Fifth Republic Movement/MVR)을 창당했다. 차베스는 1998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뒤 1999년 2월 2일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취임했다.
부패추방에 중심을 둔 대대적인 정치개혁을 공약으로 내건 우고 차베스는 급진 좌파정당인 제5공화국운동(Fifth Republic Movement/MVR)을 이끌고 선거에서 56%를 상회하는 지지를 얻었다. 차베스는 4년 간의 대통령 임기 동안 낡은 라틴아메리카식 정치를 완전히 뿌리뽑고 베네수엘라의 정체된 경제를 부흥시키겠다고 약속했다.
1999년 취임한 후 우고 차베스는 과감한 혁명을 진행했다. 이른바 ‘볼리바르 혁명’(Bolivarian Revolution)을 통해 빈민층을 위한 무상 교육, 주택 제공, 의료혜택 등의 정책을 펴나갔으며, 석유산업을 장악했다. 차베스는 1999년 헌법을 개정하고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다시 집권했다. 그러나 차베스의 빈민들을 위한 개혁은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2002년 4월 11일 이들이 일으킨 쿠데타로 쫓겨났다. 하지만 차베스는 이틀 만에 다시 권력을 잡았다.
이후 우고 차베스의 권력은 계속 불안정했고, 쿠데타에 실패한 반대파들은 2002년 12월 총파업을 하며 그의 퇴진을 요구했다. 계속되는 파업으로 베네수엘라는 혼란에 빠져들었고, 결국 차베스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한다는 조건으로 총파업은 철회되었다. 하지만 차베스는 2004년 8월 15일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승리하여 재신임을 얻었으며, 2006년 대통령 선거에서 63%의 지지를 얻어 또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우고 차베스는 2007년에는 석유 부문, 2008년에는 통신, 전기, 제철, 시멘트 회사들을 국유화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2007년 말 차베스는 자신의 종신집권을 위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붙였으나 51:49 퍼센트로 부결되었다. 차베스는 국명, 국기, 통화(bolivar fuerte), 시간대 등을 모두 자신의 의지대로 바꾸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대통령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