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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신대륙을 대상으로 한 아프리카 노예무역이 이루어지던 시대에 노예들이 거쳐야 했던 전체행로의 중간부분인 대서양 횡단 항로.
1518년경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 성인 남녀와 어린이들은 주로 영국인·네덜란드인·포르투갈인·프랑스인이 승무원으로 일하는 노예무역선에 빽빽이 실려 21~90일간의 항해를 해야 했다. 노예선은 150~600명 정도의 인원을 배에 태우기 위해 주로 기니 연안에 1개월 내지 1년가량 정박해 있었다. 그리고 적대적인 부족민들의 항구습격, 노예폭동의 조짐, 전염병, 해적선이나 적함의 공격, 악천후 등 계속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오랜 항해를 했다.
중간항로를 지나는 동안 노예폭동을 방지하기 위해 남자노예들은 계속해서 서로서로 몇 명씩 짝을 지어 족쇄를 채우거나 갑판에다 족쇄로 채워두었다. 1699~1845년 중간항로를 항해한 노예무역선들이 겪은 55건의 선상폭동 사례가 상세한 설명과 함께 기록으로 남아 있다(→ 미국, 미국 흑인).
가능한 한 많은 노예를 실어나르기 위해 노예들을 수평으로 1줄로 눕히고 각자에게는 평균 183×41㎝의 공간만이 할당되었다. 똑바로 일어서거나 몸을 돌리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많은 노예들이 그러한 자세로 죽었다. 악천후와 적도상의 무풍해역이 이어져 항해가 지연되면 하루 2번씩 배급되던 끓인 쌀, 기장, 옥수수가루 또는 감자 스튜 식사와 식수가 크게 줄어들었으며 극도의 영양실조와 그로 인한 질병이 뒤따랐다.
낮시간에는 날씨가 좋을 경우 노예들을 갑판 위로 올라가게 해서 운동을 하거나 '노예춤'(강제로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뜀박질하는 몸동작)을 추게 했다. 이때에 양심적인 선장들은 승무원들을 독려해 노예들의 거처를 청소하게 했다. 그러나 날씨가 나쁠 때는 환기가 되지 않는 비위생적인 선창 내의 숨막힐 듯한 열기와 지독한 냄새로 사망률이 매우 높은 열병과 이질이 발생했다. 중간항로에서 전염병과 자살, '고착 우울증', 폭동 등으로 인한 사망자의 비율은 13%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수많은 시체와 죽어가는 아프리카인들이 바다 속으로 내던져졌으므로 서진(西進)하는 노예선 뒤에는 으레 상어떼가 따랐다. 중간항로는 신대륙에 주요한 노동력을 공급했으며 국가간 노예무역상들에게 엄청난 수익을 안겨다주었다. 이와 동시에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 강제로 붙잡혀온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엄청난 육체적·정신적인 고통이 따랐다. 인간의 고통에 대한 노예무역 상인들의 비정함이 중간항로의 특징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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