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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영국의 음악가이자 가수 겸 작사·작곡가였던 조지 해리슨은 비틀스의 리드 기타 연주자였다. 비틀스는 로큰롤에 새로운 깊이와 정교함을 불어넣었으며, 록 음악의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밴드가 되었다. 나중에 해리슨은 작사·작곡가와 연주자로서도 명성을 떨쳤다. 해리슨은 비틀스에서 가장 어린 멤버였으며 '조용한 딱정벌레'라는 별명으로 알려졌다.
그가 비틀스 동료인 폴 매카트니를 만난 것은 두 사람이 함께 리버풀인스티튜트에 다닐 때였다. 레논과 매카트니가 비틀스의 곡 대부분을 만들었지만, 해리슨도 〈와일 마이 기타 젠틀리 윕스〉, 〈히어 컴즈 더 선〉, 〈섬싱〉 등과 같은 비틀스의 명곡들을 만들었다. 1970년 비틀스가 해체된 후 해리슨은 그의 첫 앨범인 트리플 앨범 〈올 싱즈 머스트 패스〉(1970)를 발표하는 등 솔로 활동을 벌였다. 1980년 레논이 피살된 이후 해리슨은 가족과 함께 은둔하며 보냈지만, 1980년대 후반에 보브 딜런과 로이 오비슨, 톰 페티, 제프 린이 속한 그룹 트래블링 윌버리스와 앨범을 녹음하고 공연을 하기도 했다.
영국의 음악가이자 가수 겸 작사·작곡가였던 조지 해리슨은 비틀스의 리드 기타 연주자였다.
비틀스는 로큰롤에 새로운 깊이와 정교함을 불어넣었으며, 록 음악의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밴드가 되었다. 나중에 해리슨은 작사·작곡가와 연주자로서도 명성을 떨쳤다. 해리슨은 비틀스에서 가장 어린 멤버였으며 '조용한 딱정벌레'라는 별명으로 알려졌다. 해리슨은 성공하기를 원하면서도 명성에 익숙해지지는 못했다.
그가 비틀스 동료인 폴 매카트니를 만난 것은 두 사람이 함께 리버풀인스티튜트에 다닐 때였다.
매카트니와 존 레논은 당시 이미 록 그룹 쿼리멘을 결성하고 있었다. 이후 그룹의 명칭은 '조니 앤드 더 문도그스'(Johnny and the Moondogs)를 거쳐 '실버 비틀스'로, 이어 '비틀스'로 바뀌었으며, 마침내 해리슨을 영입하고 마지막으로 링고 스타가 합류했다.
비록 레논과 매카트니가 비틀스의 곡 대부분을 만들었지만, 해리슨도 〈와일 마이 기타 젠틀리 윕스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히어 컴즈 더 선 Here Comes the Sun〉, 〈섬싱 Something〉 등과 같은 비틀스의 명곡들을 만들었다. 〈섬싱〉은 약 150명의 다른 가수들에 의해서도 녹음됐는데, 이는 리메이크된 비틀스의 곡 가운데 〈예스터데이 Yesterday〉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인도의 현악기 시타르 연주에 크게 매료된 해리슨은, 1965년 라비 샹카르와 함께 공부하면서 시타르 음악을 비틀스의 노래에 차용했다. 〈노르웨이의 숲 Norwegian Wood〉(1965)에 시타르 연주가 삽입된 이래, 다른 그룹의 음악가들도 시타르 연주를 곡 일부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해리슨은 또한 동양 종교와 문화에도 관심을 가져, 1968년 비틀스 멤버를 비롯한 많은 유명인들과 함께 인도의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의 초월 명상법을 탐구하러 갔다.
이러한 여정은 동양 종교에 대한 서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했고, 이어지는 비틀스의 수십여 곡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비틀스 멤버 가운데 실제로 이러한 종교적 원칙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것은 해리슨이 유일했다.
1970년 비틀스가 해체된 후 해리슨은 그의 첫 앨범인 트리플 앨범 〈올 싱즈 머스트 패스 All Things Must Pass〉(1970)를 발표했고, 이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1971년에는 방글라데시 기아퇴치를 위해 2차례의 기금 마련 콘서트를 열었다. 이는 이후 유명 인사들의 기금마련 행사의 원형이 되었다.
1979년에는 핸드메이드필름즈사를 설립해 영화제작이라는 새로운 분야에도 뛰어들었다.
그가 제작한 작품으로는 〈브라이언의 몬티 파이선 영화 인생 Monty Python film Life of Brian〉(1979)과 〈시간 도둑들 Time Bandits〉(1981), 〈모나리자 Mona Lisa〉(1986) 등이 있다.
1987년 해리슨은 앨범 〈클라우드 나인 Cloud Nine〉으로 솔로 활동 가운데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솔로 가수로서 발표한 곡 중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노래들로는 〈마이 스위트 로드 My Sweet Lord〉와 〈기브 미 러브(기브 미 피스 온 어스) Give Me Love(Give Me Peace on Earth)〉, 〈아이 갓 마이 마인드 세트 온 유 I Got My Mind Set on You〉 등이 있다.
1980년 레논이 피살된 이후 해리슨은 가족과 함께 은둔하며 보냈지만, 1980년대 후반에 보브 딜런과 로이 오비슨, 톰 페티, 제프 린이 속한 그룹 트래블링 윌버리스와 앨범을 녹음하고 공연을 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비틀스 선집 기획 '비틀스 앤솔로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말년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1997년 후두암 치료를 받았으며 1999년 후반에는 자택에서 정신이상자의 불법침입으로 몇 군데를 칼에 찔리는 고통을 겪었다. 2001년 중반 암이 재발했고 치료는 성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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