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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20년 6월 민족교육의 장려 진흥을 내걸고 출범한 교육운동단체.
한규설·이상재(李商在)·유근(柳瑾) 등의 발기로 1920년 6월 26일 서울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회장에 이상재, 부회장에 김사묵(金思默), 이사에 윤치소(尹致昭) 외 14명, 평의원에 유근 외 23명을 선임했다. 이후 한국인의 재력과 노력으로 교육사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취지 아래 교육제도의 개선, 교육사상의 보급, 교육기관의 확장, 교육계 풍기의 개선, 도서관 설치 및 잡지 발행, 교육공로자 표창 등의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이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1922년 1월에는 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조선교육협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같은 해 조선교육령(朝鮮敎育令)의 개정으로 대학설립의 길이 열리자, 민립대학설립운동을 전개하여 1922년 11월 이상재·현상윤·한용운(韓龍雲)·이승훈(李昇薰)·허헌(許憲)·송진우(宋鎭禹)·장덕수(張德秀) 등으로 민립대학기성회를 조직했다. 민립대학기성회는 1923년 3월 전국 각지에서 360여 명의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발기총회를 개최한 데 이어, 같은 해 4월 이상재 등 44명으로 중앙부를 조직하는 한편 각지에 지방부를 조직하여 선전과 모금에 착수했다.
이에 친일파 군수, 도평의원까지 포함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하자 일제는 1923년 5월 경성제국대학령을 발표하고 민립대학설립운동을 방해했다. 일제의 이같은 방해와 더불어 1923년의 동경대지진과 다음해 삼남지방을 휩쓴 대기근으로 모금이 여의치 않자 민립대학설립운동은 제동이 걸리게 되었으며, 1924년에 경성제국대학 예과가, 1926년에 학부가 설치되면서 크게 좌절되었다. 그뒤 조선교육협회는 각종 운동회 개최, 일인교사축출운동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1927년 민족협동전선으로 신간회(新幹會)가 출범하면서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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