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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30년대말에 결성된 국내 공산주의자들의 최대 집결체로 8·15해방 이후 재건파 조선공산당의 기본핵심이 된 조직. 전국 각지에 혁명적인 대중조직을 건설하는 것을 주된 활동으로 삼았으며, 1940년과 1941년 세 차례에 걸친 체포로 활동이 중단되었다.
'이재유(李載裕) 그룹 사건' 관련자 이관술(李觀述)·김삼룡(金三龍)은 1938년 12월부터 운동조직의 결성을 모색해오다 1939년 4월 중순 김단야(金丹冶)·이주하(李舟河)와 만나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한 조직을 결성했다. 이들은 기관지 〈공산주의자〉와 노동자 교양자료 〈노동자 리프린트〉를 발행하고 기초단위 조직을 만들어갔다. 1940년 2월 박헌영·이현상(李鉉相)이 가담하면서 박헌영의 지도 아래 김삼룡·장규경(張奎景)이 조직부를, 김태준(金台俊)·이현상·정태식(鄭泰植)이 인민전선부를, 박헌영·이관술이 기관지 출판을 담당하여 〈코뮤니스트〉를 발행하는 등 전체적 조직 구성을 완료하고 조선공산당재건경성 콤그룹으로 성립되었다.
조직 활동은 김삼룡의 지도하에 경성을 중심으로 전국 각 지역·부분의 혁명적 대중조직 건설에 주력했다. 구체적으로 경성지역은 태창직물·경성전기 등에 적색노조 공장반을 꾸리고, 김응빈(金應彬)·이주상(李胄相)·이복기(李福基)를 중심으로 경성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경상도지역은 권우성(權又成)을 중심으로 이안호(李安鎬)·이기호(李基鎬)·정재철(鄭載喆) 등이 창원·부산·대구에 적색노조·노조 조직 및 출판 활동을 펴나갔다. 함경도지역은 장순명(張順明)을 중심으로 청진좌익노동조합조직준비위원회를 결성·활동했다. 학생조직은 이종갑(李鍾甲)·윤명의(尹命儀) 등을 중심으로 보성전문학교·경성공전·경성제국대학 등에 독서회 활동을 추진했다.
1940년 12월의 1차 검거 및 1941년 9월, 12월의 2, 3차 검거로 그룹의 활동이 중단되었다. 조직구성에서 분파적 성격을 불식하고자 1920~30년대의 공산주의 활동가들을 망라하여 결속되었다. 중일전쟁 이후 변화된 국내외 정세 인식에 기초한 대중조직건설·반전투쟁·반일민족통일전선전술 등을 구체화하여 장기간 운동을 벌인 1930~40년대 국내 공산주의운동의 대표적 조직이었다. 그러나 전국적인 차원에서 정치적 지도력을 관철시키지 못함으로써 8·15해방 후 조선공산당 건설과정에서 모든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대표성을 인정받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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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조선공산당재건경성 콤그룹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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