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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다른 표기 언어 朝鮮共産黨北朝鮮分局

요약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정과 김일성 일파의 주도로 1945년 10월 평양에서 결성한 공산주의 조직.

당시 소련군정과 김일성 일파는 서울의 조선공산당과는 별도로 북한지역을 지도할 '중앙지도부'의 결성을 구상했으나 일국일당원칙(一國一黨原則)을 내세운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의 반발로 무산되자, 논란 끝에 절충안으로 중앙당에 속하되 북한의 공산당조직을 지도할 수 있는 기구로서 북조선분국을 설치하자는 제의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1945년 10월 10~13일 평양에서 정식대표 57명과 방청자를 비롯해 약 180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북 5도당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가 열렸는데, 이 대회 마지막날인 13일 북조선분국을 정식으로 결성했으며, 10일 후인 10월 23일 서울의 중앙당으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았다.

대회에서는 분국 설치와 함께 지도기관을 구성하고, 책임비서에 김용범, 제2비서에 국내파인 오기섭과 연안파인 무정을 각각 선출했으며, 김일성은 17명의 집행위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김일성이 책임비서에 선출되지 못했으며, 핵심측근인 김책·최용건 등도 집행위원 명단에서 빠졌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당시 소련군정 정치사령관이었던 니콜라이 레베데프는 김일성이 "정치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데다가 전면에 내세우기에는 시기상조였다"고 밝히면서, 특히 레닌 사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준비가 덜되었을 뿐만 아니라 빨치산 활동 이외에 내세울 만한 경력이 없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또한 입국도 하지 않은 무정(1945. 12 입국)을 제2비서에 선출한 것은 연안파 포섭을 위한 배려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북한은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명칭을 자의적으로 변경했는데, 북조선노동당 제2차 대회(1948. 3)에서는 '조선공산당 북조선중앙국'으로, 조선노동당 제3차 대회(1956. 4)에서는 '조선공산당 북조선조직위원회'로, 그리고 1965년 10월 조선노동당 창건 20주년 기념보고회 때부터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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