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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다른 표기 언어 朝鮮共産黨滿洲總局

요약 1926년 5월 중국 지린 성[吉林省]에서 조직된 조선공산당의 해외조직. 만주 전역을 동만구역국, 남만구역국, 북만구역국의 3개로 나누어 설치하여 활동하다가 1927년 제1차 간도공산당사건이 발생하자 총국에 속해 있던 화요파와 상해파, 서울파 등은 각자 독자적인 만주총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이후 만주에 거주하는 한인공산주의자들이 일국일당원칙에 입각해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기 시작하면서 만주총국의 각 파들은 해체되었다.

제1차 조선공산당 탄압사건 과정에서 상하이[上海]로 망명한 김찬(金燦)이 강달영(姜達永)에 의해 1926년 4월 조선공산당 만주부 책임비서로 임명되었다.

이어 만주로 파견된 5월 16일 조봉암(曺奉岩)이 최원택·김철훈(金哲勳)과 상해파(上海派)의 윤자영(尹滋瑛)·김하구(金河球) 등과 함께 만주총국을 조직했다. 본부는 지린 성 닝안 현[寧安縣] 닝구타[寧古塔]에 두었으며, 만주전역을 동만구역국·남만구역국·북만구역국의 3개로 나누어 설치했다. 1926년 6월 제2차 조선공산당 탄압사건을 전후하여 조봉암은 코민테른 극동부의 활동을 위해 상하이로 돌아갔다. 이에 제3차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김철수(金洙)는 상해파인 조직부장 오희선(吳羲善)을 제2대 만주총국 책임비서에 임명했다. 이후 ML(마르크스·레닌)파인 김근(金槿)이 임시책임비서로 활동했다. 그러나 1927년 10월 제1차 간도공산당사건을 계기로 화요파·상해파·ML파·서울파는 각 파별로 독자적인 만주총국을 건설했다. 1927년 10월 김찬의 지도하에 이동산(李東山)·김성득(金聖得)·김홍헌(金洪憲)을 각각 책임비서·조직부장·선전부장으로 하는 화요파의 후계 만주총국이 조직되었다. 1928년 3월에는 제4차 조선공산당 제2회 중앙간부회의 결정으로 만주총국의 책임비서와 위원에 각각 이경호(李慶鎬)와 박윤서(朴允瑞)·김영식(金泳植)·이순(李順) 등이 선임되었는데, 이는 ML파의 후계 만주총국이었다. 1928년 9월 제2차 간도공산당사건이 발생한 후 같은 해 12월 7일 코민테른은 〈조선농민 및 노동자의 임무에 관한 결의〉(12월 테제)를 발표해 조선공산당의 재조직을 지시했다. 만주의 한인공산주의자들은 각 파의 만주총국을 해체하고 일국일당원칙에 입각하여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만주총국의 해체는 각 파별로 진행되었는데, ML파 만주총국은 1930년 3월 20일 해체선언을 발표하고, 4월초에 해체되었으며, 서울파의 만주조직과 상해파의 재만조선공산주의자단체는 1929년 1월경 해체되었다. 또한 화요파의 만주총국은 제3차 간도공산당사건을 통해 대대적인 탄압을 받고, 1930년 6월 10일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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