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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한반도 최남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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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674,353 (2024) |
면적 | 1,850.16㎢ |
행정구역 | 2개 행정시 7개읍 5개면 31개동 |
요약 한반도 최남단에 있는 섬. 2006년 독자적인 자치권을 갖는 제주특별자치도로 승격되었다. 과거에는 육지와 고립된 섬이었으나, 교통 발달에 따라 전국 제일의 관광지로 발전해왔다. 천지연·천제연·정방 등의 폭포와 성산일출봉·산방산·산굼부리 등의 기생화산, 용두암·외돌괴·비자림 등의 경승지와 사적지가 곳곳에 많다. 면적 1,850.16㎢, 인구 674,353(2024).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섬. 8개의 유인도와 71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제주도는 육지와 고립된 섬이었으나 국민소득의 증대와 더불어 육지와의 교통이 편리해짐에 따라 오늘날에는 전국 제일의 관광지역으로 발전했다. 제주해협을 사이에 두고 목포와 약 140km 떨어져 있는 제주도는 윤곽이 대략 동서방향으로 가로놓인 고구마처럼 생겼는데, 남북간의 거리가 약 31km, 동서간의 거리가 약 73km이다. 행정구역은 2행정시 7읍 5면 62개동(법정동 기준, 행정동 기준은 31개)으로 되어 있다. 도청소재지는 제주시 문연로이다. 면적 1,850.16㎢, 인구 674,353(2024).
연혁
육지와 멀리 떨어진 제주특별자치도의 역사는 고을나(高乙那)·양을나(良乙那)·부을나(夫乙那)가 삼성혈(三姓穴)에서 용출한 것으로 시작된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백제, 후에는 신라와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탐라국이 육지에 직접 예속되어 행정구역으로 편제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중엽인 1105년(숙종 10)부터이다.
1271년(원종 12)에 삼별초(三別抄)가 제주도에 웅거하면서 몽골에 마지막까지 항쟁을 벌이다가 1273년에 패한 후 제주도는 원나라의 직할지가 되어 목마장이 설치되었다. 원의 직할지였던 까닭에 다른 곳보다도 몽골의 문화적인 영향이 컸으며, 대규모 목마의 흔적으로 환경에도 뚜렷한 자취를 남겨놓았다. 그후 약 1세기 동안 제주도는 고려와 원나라 사이에 소속이 여러 차례 바뀌는 복잡한 과정을 겪다가 1367년(공민왕 16)에 완전히 고려에 회복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1416년(태종 16)에 한라산을 경계로 북쪽에 제주목(濟州牧)을 두고, 남쪽의 동부에는 정의현(旌義縣), 서부에 대정현을 설치하여 전라도에 소속시켜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64년에 정의현과 대정현을 군으로 승격했으며,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23부제(府制)를 실시함에 따라 1895년에 제주부를 설치하여 정의군·대정군을 관할하도록 했다. 1896년에 다시 13도제 실시로 전라남도 제주군·정의군·대정군이 되었다. 1914년에 시행된 군면 폐합 때 정의군·대정군과 완도군 추자면이 제주군에 병합되어 제주군은 제주도 전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1915년에 도제를 실시하여 제주도라 했으며, 1946년에 비로소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제주도(濟州道)로 승격하고 북제주군 및 남제주군을 신설했다. 1955년에 제주읍을 시로 승격하고, 1956년에는 서귀면·대정면·한림면을 각각 읍으로 승격하고 한경면을 신설했다. 1980년에 애월면·구좌면·남원면·성산면을 읍으로 승격했으며, 1981년에 서귀읍과 중문면을 합하여 서귀포시로 승격했다.
1985년에 조천면을 읍으로, 1986년에 구좌읍 연평출장소를 우도면으로 승격했다. 조선시대까지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특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던 제주도는 1948년의 이른바 제주 4·3사태 등 현대사의 아픔을 겪으면서 취락의 구조 등에도 변화가 초래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변모는 1960년대 이후부터 이루어져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관광지로, 감귤 등의 상품작물의 재배지로 지역의 특성이 변모되었다.
2006년 7월 1일부터 특별자치지역으로 전환되어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독자적인 자치권을 갖는 제주특별자치도로 새로 출발했다. 자치 입법권 강화, 자치조직·인사 자율성 강화, 의정활동 강화, 주민참여 확대, 자주 재정권 강화, 교육자치 강화, 자치경찰제 실시 등 자치기능이 확대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함에 따라 기초자치단체인 시군을 폐지하고 제주 단일 광역체제로 전환되어 2행정시, 7읍·5면·31동으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지질·지형
신생대 제3기말에서 제4기에 걸쳐 수많은 용암분출로 이루어진 화산도로서 지표의 90% 이상을 현무암이 덮고 있으며, '화산의 보고'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각종 화산지형이 다채롭게 발달되어 있다.
제주도의 화산활동은 크게 5기로 나뉜다. 제1기에는 기저현무암층이 형성되고 신생대 제3기의 해성층인 서귀포층이 그 위에 쌓여 있다. 기저현무암층은 지표에는 노출되어 있지 않다.
제2기에는 유동성이 매우 큰 표선현무암의 광역분출로 용암평원(熔岩平原)이 형성되었는데 제주시의 성산읍과 한경면을 중심으로 한 동·서 양쪽의 해안지대에 평평한 용암평원이 펼쳐져 있다. 제2기말에는 산방산(395m)·성산일출봉(182m)·단산(140m)·송악산(135m) 등 10여 좌의 기생화산이 형성되었다.
산방산은 유동성이 작은 조면암질안산암이 분출하여 이루어진 종상화산으로 화구가 없고, 일출봉은 해저에서의 폭발분화로 방출된 화산쇄설물이 수중에서 쌓인 성산층(城山層)으로 화산체에 비하여 화구가 대단히 크다. 산방산과 일출봉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제주도의 명산이다.
제3기에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중심분화(中心噴火)가 진행되어 남-북해안의 저지대와 중산간지대의 제주현무암·하효리현무암 등이 분출하여 경사가 아주 완만한 한라산 산록의 순상화산체(循狀火山體)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한라산은 이때 약 950m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제4기에는 곳에 따라 해안까지 흘러간 시흥리현무암·성판악현무암 등에 이어서 한라산 정상부 주변의 산간지대에 분포하는 한라산현무암이 분출하고, 그후 한라산조면암질안산암의 분출로 해발 1,750~1,950m에 걸친 한라산 산정 서반부에 남아 있는 종상화산체가 형성되었다.
이로써 한라산은 전체적으로 이중화산(二重火山)의 형태를 갖게 되었다. 제5기에는 대규모의 폭발분화가 일어나 종상화산체가 파괴되면서 백록담화구가 형성되고 이와 더불어 백록담현무암이 소규모로 분출했다. 그리고 후화산작용(后火山作用)의 일환으로 400여 좌에 이르는 기생화산의 거의 대부분이 형성되었다.
'오름'이라 불리는 이들 기생화산은 대부분 폭발분화에 의한 다공질(多孔質) 현무암쇄설물인 적갈색 스코리아(scoria)로 이루어져 사면경사가 21~30°로 급하고 모양이 원추형이다.
일반적으로 비고는 100m 내외인데 화구가 있으나 물은 괴어 있지 않다. 기생화산의 스코리아는 제주도에서 '송이'라고 불리며, 미관을 위해 관광지 건물의 지붕을 덮는 재료로 이용되기도 하고 난초의 식재(植材)로 사용하기 위해 외지로 적지 않게 반출되기도 한다.
화산지형으로는 용암동굴이 또한 중요한데 석회동굴과는 달리 내부구조가 단순하다.
만장굴과 빌레못동굴은 세계적인 규모의 용암동굴이고, 협재굴은 지표의 패사(貝砂)가 녹아서 스며든 탄산칼슘이 침전하여 천장에 아주 작은 종유석들이 달려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무암은 투수성이 크기 때문에, 하천은 일반적으로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물이 없는 건천(乾川)이 대부분이고, 해안을 따라서는 지하수가 솟아나는 용천(湧川)이 분포한다. 해안에는 해식애가 곳곳에서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동중국해에 면한 서귀포시와 제주시의 남쪽 해안이 탁월하다.
정방폭포는 해식애에 걸려 있는 폭포이다. 곳곳에 해수욕장이 분포하나 사빈의 발달은 부진하며, 사빈은 패사가 아니면 화산사(火山砂)로 이루어져 있다. 중문·협재·표선 등의 해수욕장은 흰 색깔의 패사, 화순·삼양·신양 등의 해수욕장은 유색 화산사로 이루어졌다.
기후
위도가 낮아 기온이 높고, 바다로 둘러싸여 기온교차가 작게 나타난다.
연평균기온은 제주시 16.2℃, 서귀포시 16.2℃이다. 기온의 계절적 분포에 있어서는 여름기온은 내륙과 거의 같은 반면에 겨울기온은 훨씬 더 높아 해양성기후를 반영하고 있다. 서귀포시는 한라산이 한랭한 북서계절풍을 막아주기 때문에 겨울 날씨가 제주도에서도 가장 따뜻하다. 연평균강수량은 제주시 872.5㎜ 정도, 서귀포시 1,390.6㎜ 정도로서 한반도의 최다우지에 속한다. 연강수량의 약 60%는 6~9월에 비로 내리며, 8~9월에는 태풍이 집중폭우를 가져온다.
북서계절풍과 관련된 지형성 강수로 한라산 북쪽 사면은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리며, 한라산 남쪽 사면에 있는 서귀포를 중심으로 한 해안지방은 따뜻하여 눈이 내린다 해도 쌓이지 않고 곧 녹아버린다.
기후는 고도에 따라 차이가 크게 나타나 난대림대·온대림대·한대림대 등의 삼림대를 발달시켰다. 난대림은 한라산 남쪽 사면에서는 해발 600m, 북쪽 사면에서는 해발 400m 이하의 저지대에 분포하는데, 녹나무·후박나무·참식나무·민나무·동백나무 등의 상록활엽수가 자란다.
한라산 산록의 초지는 고려시대에 말이 도입된 이후 방목을 위하여 삼림을 제거, 조성한 것으로서 전통적으로 화입(火入)에 의해 유지해왔다. 해발 1,500m의 온대림은 오늘날 남아 있는 핵심적인 삼림으로서 졸참나무·개서나무·서나무·단풍나무·북가시나무·구실잣밤나무·굴거리나무 등의 낙엽활엽수가 주요수종이다. 해발 1,500m 이상의 한대림은 구상나무·주목나무·고채목·분비나무 등의 침엽수로 이루어져 있고, 기온이 낮고 바람이 많이 부는 산정부에는 털진달래·암매·눈향나무 등의 관목림이 나타난다.
인구와 도시
인구
일제강점기에 제주도민들은 반도부뿐만 아니라 일본으로도 많이 진출하여 8·15해방 직전까지 제주도의 인구는 20만 명 수준에서 증감을 되풀이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일본으로 건너간 도민들이 귀환하여 1944년에는 22만 1,366명으로 늘어나고 8·15해방 직후인 1946년에는 26만 6,149명에 이르렀으나, 1948년의 4·3사태로 상당한 인구 손실이 있었다.
6·25전쟁 때는 피난민이 대량으로 유입되고 모슬포에 육군제일훈련소가 들어섬에 따라 인구가 크게 늘어나 1955년에는 28만 8,806명을 기록했다가 곧 해방 직후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그후 제주도의 인구는 지금까지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여왔다. 1960년대말경부터 추진된 본격적인 관광 및 감귤농원의 개발로 인구의 사회적 증가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1960년에 28만 1,723명이었던 인구는 2000년에 54만 3,323명으로 증가했다. 2024년 기준 인구는 67만 4,353명, 가구수는 31만 3,050가구, 가구당 인구는 2.15명이다.
제주도는 여자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1995년 인구의 남녀비율은 98:100인데, 이같은 여초현상은 남자가 외지로 많이 전출하기 때문에 나타나게 된 것이지만 15~24세의 연령층에서는 다른 도와 마찬가지로 남자가 여자보다 많았다. 전체 연령층에 있어서도 여초현상이 완화되었으나 5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는 여전히 여성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남녀가 거의 같은 비율을 유지하고 있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도시
육상의 자원이 빈약하여 취락은 수산물을 얻기 쉬운 해안의 포구를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물이 귀한 제주도에서 해안은 용천이 솟아나 취락의 입지에 유리하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반도부에서 전란과 사회적·경제적 핍박을 피해 유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중산간지대로 농경지가 확장되면서 거주지역이 넓어졌다. 원나라에 의해 목마장들이 설치됨과 동시에 형성된 목마촌도 중산간지대의 취락발달에 한몫을 했다.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이르는 기간에는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해안지대의 많은 취락들이 중산간지대로 옮겨졌다.
오늘날의 표선면 성읍리가 대표적인 취락으로 본래 성산읍 고성리에 있던 정의현이 이곳으로 옮겨지고 새 성벽이 쌓임으로써 형성된 것이다. 중산간지대는 물이 귀하여 빗물, 즉 봉천수가 식수로 이용되었다. 1920년대에 해안을 따라 건설된 신작로, 즉 일주도로는 취락의 분포에 또 한번의 큰 변화를 일으켰다. 일주도로가 경제활동의 대동맥으로서 중요도가 높아짐에 따라 중산간지대의 취락들은 급격히 쇠퇴하는 한편 일주도로에 면한 해안지대의 취락들은 각종 공공기관과 시설들이 옮겨오거나 신설됨에 따라 급속히 성장하여, 도시로 발전하기도 했다. 애월·한림·모슬포·서귀포·남원·성산 등이 그러한 예이다. 제조업의 발달이 보잘것없는 이들 도시는 지역 중심지로서의 기능 이외에 주로 관광산업과 농·수산업에 바탕을 두고 발전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인구면에서 도시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제주시는 1970년대부터 추진된 신시가지(신제주)의 개발로 급속히 성장했고,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인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은 행정구역이 2개행정시 7개읍 5개면 31개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도시인구율이 높다. 그러나 읍급도시들은 면적과 인구에 비해 중심시가의 발달이 빈약한 것이 보통이며, 주민의 대부분이 1차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남원읍과 애월읍은 제주시 및 서귀포시와 면적이 비슷하고, 이들 읍과 시는 행정구역 안에 한라산 산정부를 포함하고 있다.
산업과 교통
농·축산업
제주도는 물이 부족하고 충적지가 없어 경지면적 가운데 논은 별로 없고 과수원과 목장용지로 이용되는 땅이 넓은 편이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 논·밭은 다소 줄어들었으나, 과수원과 목장용지는 1970년대부터 계속 넓혀져왔다. 농가인구는 1970년대부터 다른 도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줄고 있다. 그러나 감소율이 전국 평균치에 비해 낮으며, 농가인구율은 전국 평균치보다 높다. 그 까닭은 특히 감귤재배가 농가소득을 높여왔기 때문이다.
농경지는 해발 200m 이하의 해안지대에 집중되어 있다. 총 경지면적은 61.09㎢, 논 면적은 17㎢, 밭 면적은 61.07㎢이다(2017). 주요 농작물은 맥주보리·조·콩·고구마·유채(油菜)·채소 같은 밭작물과 감귤이다. 1960년대 전반까지 식량작물 위주로 유지되던 농업구조는 그후 고소득경제작물 중심으로 개편되어왔다. 아열대성 과일인 제주도의 감귤은 조선시대에는 진상품으로 조정에 바쳐졌고, 일제강점기에 개량품종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감귤농업은 1960년대말경부터 농어민소득의 제고를 위한 정부지원이 확대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60년에 재배면적 0.93㎢에 생산량이 191t이던 것이 2017년에는 20.14㎢의 과수원에서 57만 6,722t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감귤은 한라산 북쪽 사면의 제주시에서도 재배되지만 겨울이 따뜻한 서귀포시·남원읍이 주산지이다.
1960년대부터 겨울철의 경제작물로 재배되기 시작한 유채는 1976년에 재배면적이 128㎢에 이르던 것이 1994년에는 16㎢로 줄어들었다. 식물성 식용유의 원료로 콩의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수요가 격감했기 때문이다. 바나나와 파인애플은 시설작물로 재배, 일부 농가의 소득증대에 기여했으나 농산물수입이 자유화되면서 1990년 이후 감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대규모의 초지조성(草地造成)에 의한 축산도 감귤농업처럼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가축의 주종은 한우·젖소·돼지·닭 등으로서 전반적인 사육두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중산간지대를 중심으로 개발된 초지에는 많은 목장이 있다. 농가에서 널리 사육하던 재래종 돼지는 희귀해졌고, 제주말은 그 수가 줄어 멸종 위기를 맞아 천연기념물 제314호로 지정되었다.
수산업
어가인구도 농가인구의 경우처럼 줄어들고 있으나 전국 수준에 비해 감소율은 낮은 편이고 어가인구율은 높은 편이다. 어가인구는 전체인구의 5%(9,884명) 미만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2015).
어선은 대부분이 동력선이나 10t 미만의 어선이 대부분이어서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갈치·도미·조기 등이 주로 잡히며, 제주·서귀·화순·성산·한림 등에 지정어항과 소규모 어항이 있다. 예로부터 해녀들이 어업활동에서 큰 몫을 차지해왔다. 그러나 연해의 수산자원과 더불어 그 수가 크게 줄어들어 해녀의 물질은 명맥만 유지되고 있을 정도이다. 해녀들은 전복·해삼·소라 등을 주로 채취한다.
광업·공업
현무암이 건축재료나 조각재료로 이용될 뿐 광산자원이 산출되지 않으며, 공업도 극히 부진한 상태에 있다. 공업의 입지조건이 반도부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데다가 공해산업이 강력한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2016년 기준 광업 및 제조업체수는 224개소가 있으며, 5,298명의 종업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 중 종업원 50명 이하의 영세업체에 속한 제조업체가 절반이 넘는다. 도내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을 가공하는 식료품공업이 업체수의 약 30%를 차지한다.
교통
1920년대에 건설된 12번 국도인 일주도로가 오랫동안 간선도로의 구실을 해오다가 1960년대 이후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직접 연결하는 11번 국도(제1횡단도로 또는 5·10도로)와 99번 국도(제2횡단도로)가 개통되면서 두 지역 간의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해상교통은 1977년에 제주-부산 간 카페리가 취항하면서 쾌속화·대형화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제주와 목포·부산·완도·진도 및 서귀포와 부산을 잇는 정기항로가 개설되어 있다. 제주-목포 항로는 여객수송이 가장 많고, 제주-완도 항로는 항로의 거리가 가장 짧다.
항공교통은 제주국제공항을 중심으로 서울·부산·대구·광주·진주·여수·목포·울산·포항·군산 등을 운항하는 국내노선과 오사카[大阪]·도쿄[東京]·나고야[名古屋]·후쿠오카[福岡]·센다이[仙台]·괌 등을 운항하는 국제노선이 있어 관광산업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문화·관광·교육·의료·복지
제주특별자치도는 다양한 문화유산이 있으며,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제주시 삼도2동의 관덕정(觀德亭:보물 제322호)은 조선시대의 관아가 있던 곳이며 제주시 이도동의 삼성혈(三姓穴:사적 제134호)이 있다. 문화행사로는 한라문화제·유채꽃큰잔치·제주감귤축제·한라산철쭉제 등이 있다. 대표적인 문화행사로 한라문화제는 1962년부터 시작되어 매년 10월에 개최되며, 민속예술경연·조랑말경주·잠수경기 등의 민속행사가 문화제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도내의 수많은 관광지 중 방문객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는 30여 개소에 이르는데, 특히 천지연·천제연·정방 등의 폭포, 김녕사굴·협재굴·쌍룡굴 등의 용암굴, 성산일출봉·산방산·산굼부리 등의 기생화산과 용두암·외돌괴·안덕계곡·비자림 같은 경승지, 삼성혈·항파두리항몽유적지 등의 사적지와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성읍민속마을이 인기가 높다. 관광객은 3~5, 8~11월에 많으나 연중 비교적 고르게 분포한다.
2018년 기준 교육기관은 유치원 119개소, 초등학교 113개교(분교 7개교 미포함), 중학교 45개교, 고등학교 30개교, 전문대학 2개교와 제주대학교·탐라대학교가 있다.
2017년 기준 의료기관은 종합병원 6개소, 병원 7개소, 의원 415개소, 요양병원 10소, 치과의원 207개소, 한의원 181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63개소가 있다. 한라산국립공원과 그밖에 자연 및 민속과 관련된 관광자원이 매우 풍부하고, 숙박·교통 등의 관광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한국 제일의 관광지역으로 발전했다.
복지시설로는 노인여가복지시설 464개소, 노인주거복지시설 2개소, 노인의료복지시설 66개소, 재가노인복지시설 47개소, 여성복지시설 10개소, 아동복시시설 5개소, 장애인복지생활시설 13개소, 노숙인 생활시설 2개소, 어린이집 527개소 등이 있다.
지역개발
1966년에 제주도가 경인·태백산 지역과 더불어 특정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지역개발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당시에 지역개발은 관광·수자원·교통·농업·수산업 등 5개 부문에 걸쳐 추진되었다. 10개년에 걸친 제1차국토종합개발계획(1972~81)에서는 제주도를 전국 차원의 8중권(八中圈)의 하나로 설정하고,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각각 중심거점과 부심거점으로 삼아 한라산의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한편 어업전진기지의 기능을 강화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의 하부계획으로 수립된 제주도종합개발계획(1972~81)에서는 제주도를 국제관광지로 육성하기 위해 각종 관광자원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동시에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는 데 지역개발의 기본목표를 두었다.
그리고 관광부문의 개발내용을 더욱 구체화하기 위한 제주관광종합개발계획(1973~82)이 수립되었는데, 기본방향은 관광개발을 거점적으로 추진해 그 파급효과를 높이며 모든 산업을 관광주도형으로 발전시켜 도민의 소득증대를 이루는 것이었다. 개발전략은 3개 부문으로 나뉘어 첫째, 주요관광지의 기능을 지역특성에 알맞게 부여하고, 둘째, 도로·항만·공항·용수 등 관광기반시설을 확충하며, 셋째, 수산·축산·감귤 등 관광연관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관광종합개발이라고 하나 관광에 초점을 맞춘 지역개발이나 다름없다. 중문관광단지·성읍민속마을 및 여러 골프장의 건설과 간선도로, 제주국제공항, 제주항, 통신망의 확충·정비가 이 계획의 추진과정에서 크게 구체화되었으며, 지하수의 개발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제2차국토종합개발계획(1982~91)의 하부계획으로 수립된 특정지역제주도종합개발계획(1985~91)에서는 관광산업, 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 감귤사업 등을 실시해 제주도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나 지역주민의 개발참여가 미흡했고, 자연경관이 상당히 훼손되는 등으로 개발에 대한 도민들의 소외감과 거부감이 표출되었다.
따라서 정부주도의 개발방식을 지양하고,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며, 개발이익이 지역에 환원될 수 있는 제주도개발특별법을 제정하여 제주도종합개발계획(1994~2001)을 수립했다. 기본적인 발전전략은 1차 산업 및 관광산업의 집중육성을 통하여 지역산업 구조를 개편·조정하고, 자연경관 및 환경보전 체계를 확립하며, 사회간접자본 및 생활편익시설을 확충한다는 것이다. 계획의 주요내용을 보면, 첫째, 농·림·축·수산업의 진흥을 위해 기술 및 자본집약형 첨단농업으로 육성하며, 생산기반을 확충하고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과 수출을 확대시킨다.
둘째,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을 위해 공항시설 확충 및 국내·외 항로를 증설하고, 항만별 전담기능을 부여하여 개발방향을 설정하며, 도로시설의 확충 및 연결성을 강화하고, 특히 종합적인 정보통신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셋째, 생활 및 복지환경의 개선을 위해서 지역주민 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한 생산환경을 개선하고 보건·사회·문화시설을 확충·정비한다. 넷째, 교육·문화 및 체육의 진흥을 위해 제주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교육을 실현하며, 향토문화의 독창성과 주체성을 유지·보전하기 위한 향토문화의 발굴·진흥에 힘쓰며, 1998년 전국체육대회를 대비한 체육시설의 확충 및 선수양성에 역점을 둔다.
다섯째, 자연환경의 보전과 토지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환경보전과 개발에 조화를 도모하고 수려한 경관지·생태계의 표본지역 등을 보전하고 배후지를 개발한다. 여섯째, 환경오염관리를 위해서는 환경오염원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관리하며, 제주지역의 환경기준을 별도로 설정하고 준수한다. 특히 대규모 배출시설 및 개발사업의 입지제한과 사전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여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추구한다.
일곱째, 수자원의 개발 및 보전에 역점을 둔다. 여덟째, 관광개발을 위해 관광산업의 국내외 경쟁력을 제고하여 국제수준의 관광지를 조성하고, 시설의 확충과 활동형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한다는 것을 주요골자로 하고 있다.
제주도는 2006년 7월부터 제주특별자치도로 새롭게 출범했다.
이에 따라 경쟁력 있는 국제자유도시로 발전해나가기 위해 국제자유도시에 적합한 교육서비스 제공, 특화된 양질의 의료서비스 모델 개발 및 육성, 첨단산업의 육성, 청정 1차산업의 육성 등을 목표로 산업 인프라 및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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