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요약 1923년 북만주에서 조직된 항일비밀결사. 일본 관공서를 습격하여 파괴하고 관리들을 처단하는 것 등을 목적으로 삼았다. 단체의 성격은 러시아 10월 혁명의 영향으로 사회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었으나,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정치적 성향은 가리지 않겠다는 비타협적 민족주의를 기본으로 삼았다. 이후 1926년 신민부와 대립하다가 다른 사회주의 단체들과 함께 해체되었다.
1910년대부터 서북간도와 시베리아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결사대·맹호단 등의 후신이다. 1923년 2월초 만주 닝안현[寧安縣] 영고탑(寧古塔)에서 대한국민회 간부 최웅렬(崔雄烈)·한상오(韓尙五), 의열단원 오성륜·김강(金剛)·이열(李烈)·김규식(金圭植) 등이 모여 일제 관공서의 파괴, 일제관리 처단, 친일부호의 재물 탈취 등을 목적으로 조직했다.
이들은 결성과 동시에 〈적화운동결의 赤化運動決議〉를 발표했는데, 내용은 적색혁명을 위해 불완전한 사회제도를 타파하고 일본제국주의 타도를 위해 무장행동과 문화운동을 병행하며, 특히 게릴라전의 전개가 당면한 중요 임무라는 것 등이었다.
이념적으로 러시아 10월혁명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적 지향도 보이지만, 민족혁명이든 공산혁명이든 한민족의 해방을 위해서라면 가리지 않겠다는 비타협적 민족주의가 기본이었다. 따라서 같은 해 6월 북로군정서·국민회·의군단(義軍團) 등 우익 민족주의 단체들과 연합회의를 갖기도 했다. 이후 조직구성을 이중으로 하여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일반단원을 보통단원으로, 무장투쟁을 주로 하는 민족주의 청년들을 특별단원으로 선별하여 입단시켰다.
1925년 4월 공산청년학교 설립, 〈전위〉 잡지의 발행, 청년회 조직 등을 결의했다. 그러나 우익 민족주의 무장독립운동단체인 신민부와 대립하다가 1926년 다른 사회주의 운동단체들과 함께 소멸되고 말았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