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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지치는 뿌리가 굵고 자주색을 띤 다년생 풀로서 우리나라 전국에 분포되어 있으며 고려·조선 시대에 염료로 많이 사용되었다. 〈계림지〉에는 "고려사람은 붉은빛과 보랏빛 물들이기를 묘하게 했고 자적(紫赤)빛은 중국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했으며, 〈성호사설〉에는 "지금 적자색은 지치로 물들이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이를 자주색이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 〈규합총서〉에는 자주색의 염색방법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비단은 지치 1근이면 5~6자를 충분히 들이며, 명주 1필에는 지치가 6근이 든다. 자색은 삼국시대 이래 관리들의 공복색으로 일반인들의 사용이 제한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사치를 금지하려는 목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자색의 옷을 입지 못하게 했던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보인다.
지치는 뿌리가 굵고 자주색을 띤 다년생 풀로서 우리나라 전국에 분포되어 있으며 고려·조선 시대에 염료로 많이 사용되었다.
〈계림지 鷄林志〉에는 "고려사람은 붉은빛과 보랏빛 물들이기를 묘하게 했고 자적(紫赤)빛은 중국보다 훨씬 뛰어나다"라고 했으며, 〈성호사설 星湖僿說〉에는 "지금 적자색은 지치로 물들이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이를 자주색이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 〈규합총서 閨閤叢書〉에는 자주색의 염색방법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염료인 지치는 겉껍질을 긁어내고 찧을 때 겉가루와 속가루를 각각 받아 체로 쳐서 시루떡 반죽만큼 물을 부어 짓이기며, 여러 번 찧은 다음 단물[軟水]에 담갔다가 하룻밤 불린 지치를 자루에 넣고 40℃ 정도의 더운물을 부어가며 옷감에 물을 들이는 것이다. 이때 겉가루를 모은 염액(染液)으로는 뜯어서 빨아 다시 만들 옷이나 대수롭지 않은 의복을 물들이고, 속가루를 모은 염액으로는 비단과 좋은 옷감을 5번쯤 반복해서 물들인다.
염색이 골고루 잘 들게 하기 위하여 매염제인 재[灰汁]로 여러 번 주무른 후에 물로 깨끗이 씻고 건조시킨다. 비단은 지치 1근이면 5~6자를 충분히 들이며, 명주 1필에는 지치가 6근이 든다. 자색은 삼국시대 이래 관리들의 공복색으로 일반인들의 사용이 제한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사치를 금지하려는 목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자색의 옷을 입지 못하게 했던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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