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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미국의 디자이너 부부.
레이 임스의 결혼 전 성은 Kaiser.
아름답고 안락하며 우아하고 섬세한 가구를 설계하고 대량생산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또한 책도 쓰고 영화도 만들었으며, 전시장과 직물·산업용품·소비제품 등도 디자인했다. 건축가이기도 했던 찰스는 미시간 주 블룸필드힐스에 있는 크랜브룩 예술 아카데미의 실험 디자인학과 학과장으로 있으면서(1939~41) 역시 건축가이며 디자이너인 이로 사리넨과 함께 다양한 디자인 작업을 했는데, 그중 몸에 꼭 맞는 조개 모양 의자가 뉴욕 시 현대미술관이 개최한 '유기적 형태의 디자인 대회'(1940~41)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는 1940년 당시 한스 호프만과 함께 회화를 공부하고 있던 레이 카이저를 만나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고, 1941년 그녀와 결혼했다.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그곳에서 찰스는 영화의 세트를 디자인하고 베니어판 이용에 대해 연구했는데, 이 연구는 그가 에반스프로덕츠사(社)의 서해안 지구 연구개발실장이 된 1943년에도 계속되었다. 1946년 현대미술관에서 찰스는 가구 디자이너로는 최초의 초대전을 가졌다(그는 공동 노력으로 이룬 결실의 영예를 종종 혼자 독차지했음). 이 초대전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허먼밀러가구회사가 기계로 제작한 베니어 가구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임스 부부는 캘리포니아에서 디자인 활동을 계속했으며 건축 기획, 제품 디자인, 영화 제작, 전시회 등에도 관여했다. 1949년 퍼시픽 팔리세이즈(태평양 연안의 암벽)에 건축한 그들의 집은 기계 생산제품들을 세련되게 이용한 것이 돋보인다. 1955년 이후 이들은 점차 영화 제작, 주로 교육영화 제작에 힘을 기울이게 되었는데, 그 뛰어난 예가 〈10대의 힘 Powers of Ten〉(1968)이다. 1960년대에 임스 부부는 많은 미국 굴지의 회사들에서 디자인 고문으로 일했다. 뉴욕 세계박람회(1964~65)에서 국제 사무용 기계전에 이바지한 이들 부부의 공로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10년 후 그들은 같은 회사의 후원 아래 '프랭클린과 제퍼슨'이라고 불린 대규모의 미국 200주년 전시회를 설계했는데, 이 전시회는 뉴욕 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시카고 미술연구소에서 개최되기 전에 파리·바르샤바·런던에서 열렸다. 1978년 찰스가 죽은 후에도 레이는 다양한 디자인 기획을 계속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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