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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독교조선교단

다른 표기 언어 日本基督敎朝鮮敎團

요약 일제에 의해 강제로 조직된 한국 개신교 통일재단. 전신은 일본 그리스도교 조선혁신교단이며, 이것은 황국신민화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된 신사참배를 그리스도교에 흡수시킨 것으로 명칭에는 기독교가 들어가 있었지만 실상은 기형적인 것이었다. 구성원은 한국 교회 지도자들 중 일제에 호의적인 사람들이었으며, 성경의 구약을 모두 삭제하고 신약도 4복음서를 제외하고 모두 삭제했다. 이후 1945년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을 조직해 일본 그리스도교 교단에 흡수시켰으나 8월 일본이 패망하는 바람에 자동적으로 해체되었다.

일제는 1930년대부터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황국신민화정책을 강화했으며 그 일환으로 등장한 것이 신사참배 강요였다. 이 정책은 일부 그리스도교도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한국 그리스도교의 교단 차원에서 수용되었다. 그후 일제는 종교단체법 등을 제정하면서 종교탄압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의 전신은 1942년 3월 조직된 일본 그리스도교 조선혁신교단(朝鮮革新敎團)이다.

이 혁신교단은 일제가 전시하의 종교통제를 위해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 중 일제에 타협적인 자들을 뽑아 조직한 교단이었으며, 의장은 전필순(全弼淳)이었다. 이들은 성서 중에서 〈구약성서〉의 모세 5경과 〈신약성서〉의 〈요한의 묵시록〉을 불온사상으로 간주하여 삭제했다. 전시상황이 더욱 악화되자 〈구약성서〉는 전부 폐지하고 〈신약성서〉도 4복음서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삭제했다. 그리고 4복음서도 당국이 허가한 해석의 범위에서만 설교할 수 있었다.

1943년에는 성결교(聖潔敎)·안식교(安息敎)·동아기독교(東亞基督敎) 등의 재림(再臨)사상을 위험사상으로 간주하여 이 교단들을 해산시켰다. 그리고 남아있던 감리교를 중심으로 하여 장로교와 구세군 등을 포섭하고 일본 그리스도교 조선감리교단으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총리에는 감리교의 정춘수를 임명했다. 또한 일요일의 오후 집회와 수요일의 집회를 금지시키고, 청년회·사경회·아동집회 등을 모두 해산시켰으며 교회 안에는 황국신민서사·황도실천·전도보국(傳道保國) 등의 표어를 강제적으로 달게 했다.

1945년에는 마침내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을 창립하여 완전히 일본 그리스도교 교단에 예속시켰으며 교단의 최고 책임자인 통리에는 김관식을 임명했다. 그러나 이 교단은 1개월도 채 안 되어 일제의 패망으로 자동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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