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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제정 러시아 시대의 혁명적인 지식인 계급.
이 용어는 19세기 후반부터 러시아에서 쓰이기 시작했는데 사회적 집단과 정신의 상태 모두를 지칭하기 때문에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인텔리겐치아는 기본적으로는 우수한 근대교육의 세례를 받고 정치적·사회적 이념에 열렬히 경도된 사람들로 구성된다.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몽매한 사람들은 물론 인텔리겐치아가 될 수 없지만 교육을 받고 지식을 갖추었다고 해서 모두 인텔리겐치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뛰어난 과학자라 하더라도 그가 과학에만 충실하다면 인텔리겐치아가 될 수 없다.
인텔리겐치아의 핵심은 경제가 점점 발달하면서 사회적 중요도와 숫자가 증가한 법률·의학·교육·엔지니어링 등에 종사하던 자유직 종사자들로 구성되었으며 그밖에 지주, 관리, 군 장교 등도 포함되었다. 인텔리겐치아는 그 속성으로 인해 기존의 정치적·사회적 제도와는 적대적이었으며 이런 입지는 문화 전반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지배했다. 특히 문학작품은 그것이 사회진보의 대의를 전진시켰는지 아닌지에 따라 인텔리겐치아에 의해 그 가치가 평가되었다. 이런 사회적 공리주의의 전통은 비평가 비사리온 벨린스키에서 시작되어 1850년대 후반에 N. A. 도브로류보프에 의해 확대·계승되었다. 그 극단적인 주창자는 드미트리 Ⅰ. 피사레프인데, 그는 모든 예술이 무용지물이며 생각하는 사람들의 유일한 목적은 '굶주리고 헐벗은 국민들의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을 영구히 해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890년대의 사회적 공리주의의 대변인은 전에 '민의'라는 테러 집단의 지지자였던 사회학자 니콜라이 K. 미하일로프스키였다. 러시아문학이 전제정치의 관리들과 사회적 공리주의의 급진론자들 양측으로부터 검열을 받았다 해도 결코 과장은 아니다. 그러나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알렉산더 블록 등의 작가나 20세기 초반의 상징주의 시인들은 사회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들의 기준에 순응하지는 않았다. 인텔리겐치아는 정부보다는 혁명가들에게 더 동감했지만 적극적인 혁명가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러시아의 많은 직업적 혁명가들은 인텔리겐치아에서 나왔다.
인텔리겐치아들은 러시아를 서유럽의 개인주의적 시민사회의 모델에 따라 변혁하고자 했던 서유럽파와 미래 사회질서의 기반으로서 농민공동체의 가치와 잠재력을 믿었던 슬라브파로 크게 나뉘었는데, 이들은 후에 등장하는 인텔리겐치아요의 의미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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