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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2세기경부터 인도의 철학과 종교의 여러 학파에서는 자신의 주장이나 논쟁을 목적으로 논리학이 연구되어, 니아야(nyāya 正理)라는 논리학의 대강이 성립되었다. 불교에서 논리학은 특히 유식사상 계통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되어 인식논리학으로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한편 불교 자체 내에서도 고유한 논리학적 전통이 이어져왔는데, 그것은 대승불교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용수의 〈방편심론 方便心論〉·〈중론 中論〉·〈회쟁론 廻諍論〉 등의 저작과 〈해심밀경 解深密經〉의 제8품인 〈여래성소작사품 如來成所作事品〉, 미륵의 〈유가사지론 瑜伽師地論〉, 무착의 대승아비달마집론 〈大乘阿毘達磨集論〉, 세친의 〈여실론 如實論〉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6세기경 활동했던 진나는 이와 같은 전통을 계승하면서, 3지작법, 인의 3상설, 구구인론 등의 이론을 확립하여 불교논리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일반적으로 진나를 기준으로 하여 그 이후의 인도논리학을 신인명, 그 이전을 고인명으로 구분할 만큼 논리학의 발전에 대한 진나의 기여는 절대적이다. 그의 저술에는 〈집량론 集量論 Pramāṇasamuccaya〉·〈인명정리문론 因明正理門論〉 등이 있다.
진나 이후 그의 문하에서 나온 상갈라주는 〈인명입정리론 因明入正理論〉을 저술했으며, 7세기 중반에 법칭은 〈집량론〉의 해석서인 〈양평석 量評釋 Pramāṇavārttika〉과 〈정리적론 正理滴論 Nyāyabindu〉 등의 논리학서를 저술하여 진나의 논리학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8세기에 활동했던 적호와 그의 제자 연화계는 〈섭진실론 攝眞實論 Tattvasaṃgraha〉과 그에 대한 주석서를 저술하여 불교인식논리학을 집대성했다.
중국에서는 당(唐)의 현장(玄奘)에 의해 인명이 소개되어 일시적으로 활발하게 번역·연구되었으나 법상종 이외의 다른 종파에서는 불교학의 중요한 분야로 인식되지는 못했다. 한국에서는 신라시대에 인명에 대한 활발한 연구 활동이 있었다. 대표적인 학승들로는 원측·원효(元曉)·도증·승장·신방·경흥·대현·도륜·순경·오진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학자들의 저서가 산실되었고 행적이 명확하지 않아 이들의 사상을 파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최근에 발견된 원효의 〈판비량론 判比量論〉은 인명의 비량 형식을 통하여 불교 교리의 근본 문제들을 판석한 책으로 그가 인명에 정통해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판비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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