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이희승

다른 표기 언어 李熙昇
요약 테이블
출생 1896. 6. 9, 경기 의왕
사망 1989. 11. 27
국적 한국

요약 수필가∙국어학자. 국어학 외에도 고전문학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 〈조선문학연구초〉 등을 펴냈고 왕성한 시작 활동으로 〈박꽃〉, 〈심장의 파편> 등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딸깍발이>, <유머 철학-웃음과 인생>이 있다.

이희승

대한민국의 원로 국어학자

ⓒ 연합뉴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본관은 전의. 자는 성세, 호는 일석.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서울에서 신학문을 배우기도 했으나, 본격적으로 국어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중앙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30세가 넘는 만학으로 경성제국대학 조선어학급 문학과를 졸업하고 경성사범학교 교유를 거쳐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조선어학회'에서 학회활동과 국어연구에 주력했으나,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피검되어 해방될 때까지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8·15해방 후 경성대 교수로 있다가 1946년 학제개편으로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썼다. 〈한글맞춤법 강의〉(1946)를 비롯하여 〈조선어학논고 朝鮮語學論考〉(1947)·〈초급국어문법〉(1949)·〈국어학개설 國語學槪說〉(1955) 등 그의 국어학 관계 대표저작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또한 그는 국어사전 편찬에도 힘을 기울여 〈국어대사전〉(1961)의 간행을 이루었다. 1961년 정년퇴임 후에도 서울대 명예교수, 동아일보사 사장, 대구대학교 대학원장,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장,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장, 현정회 이사장 등을 두루 역임하며 학문활동·후진양성·사회활동 등을 활발히 했다.

그가 주로 학문활동을 하던 시기는 어문정리와 규범문법의 확립에 관심이 모아지던 때였다. 그러한 시대상황과 학문적 분위기에서 규범문법을 연구하고 체계화하는 데 힘썼다. 이렇게 하여 완성된 규범문법체계의 특징은 〈초급국어문법〉에 그 전모가 최초로 나타나 있다.

여기서 국어의 품사를 10품사(명사·대명사·조사·동사·형용사·존재사·관형사·부사·접속사·감탄사)로 분류했는데, 종전의 지정사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체언의 활용어미로 처리한 점과 수사를 대명사에 포함시키고 접속사를 독립품사로 설정한 점 등 독특한 품사분류체계를 보여준다. 또한 어절의 개념을 도입하고 문장성분을 7성분(주어·서술어·수식어·한정어·목적어·보충어·독립어)으로 나누는 등 후대의 규범문법 정립에 끼친 영향이 크다.

그는 규범문법의 정립에만 그치지 않고 근대적인 학문으로서 국어학의 체계를 세우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연구는 〈국어학개설〉에 집대성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음운론·어휘론·문법론에 두루 걸쳐 국어의 제반현상에 대한 치밀하고도 섬세한 기술의 체계를 보여준다. 국어학 분야에 있어서 이룩된 업적들은 그뒤로도 많은 후학들에 의해 계승되어 현대 국어학 발전의 토양이 되었다.

그는 국어학 외에도 고전문학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 〈조선문학연구초 朝鮮文學硏究抄〉(1946) 등을 펴냈고 왕성한 시작 활동으로 〈박꽃〉(1947)·〈심장의 파편〉(1961) 등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외에도 자서전적 수필 〈딸깍발이〉(1952)·〈오척단구 五尺短軀〉(1956) 등을 비롯하여 〈벙어리냉가슴〉(1956)·〈소경의 잠꼬대〉(1962)·〈먹추의 말참견〉(1975) 등의 수필집을 남겼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학자

학자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이희승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