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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의 학문과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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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황의 학문은 주자학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주자학에서 중요시되는 글뿐만 아니라 주자의 글을 깊이 연구하고, 알기 쉽게 편집했다. 50세 이후에 대부분의 저술이 이루어졌다. 이황의 성리학은 정자와 주자의 개념을 수용하여 독자적으로 발전시켰으며, 이를 보다 중시하는 이기이원론이란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이를 우주의 최종적 본원이자 본체로서 규정하고 현상세계인 기를 낳는 것이라 파악했다. 이러한 이기론의 구조와 특성은 성과 정의 근원을 이와 기를 분별하는 방법을 통해 구심성론에 뚜렷이 드러난다. 이황은 양명학과 서경덕·나흠순의 견해를 집중적으로 비판하여 조선의 주자학이 성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황의 학문은 주자학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이황

이황의 묘, 경북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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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도설〉·〈주역〉 등 주자학에서 중요시되는 글뿐만 아니라 〈주자어류 朱子語類〉·〈주자대전 朱子大全〉 등 주자의 글을 평생 금과옥조로 여겨 깊이 연구했고, 이를 알기 쉽게 편집했다. 주자의 서한문을 초록한 〈주자서절요 朱子書節要〉 20권은 그가 평생 정력을 바쳤던 편찬물이다. 그의 학문이 원숙하기 시작한 것은 50세 이후부터로 대부분의 저술이 이때 이루어졌다. 53세에 정지운(鄭之雲)의 〈천명도설 天命圖說〉을 개정하고 후서(後敍)를 썼으며 〈연평답문 延平答問〉을 교정하고 후어(後語)를 지었다.

56세에 향약을 기초하고 57세에 〈역학계몽전의 易學啓蒙傳疑〉 를 완성했다. 58세에 〈주자서절요〉 및 〈자성록 自省錄〉을 거의 완결하고 서(序)를 썼다. 59세에 기대승(奇大升)과 더불어 사단칠정(四端七情)에 관하여 토론했는데 이 논변(論辨)은 66세 때까지 계속되었다. 62세에 〈전도수언 傳道粹言〉을 교정하고 발문을 썼으며, 63세에 〈송계원명이학통록 宋季元明理學通錄〉의 초고를 탈고하여 그 서를 썼다.

이것은 명나라 황종희(黃宗羲)의 〈송원학안 宋元學案〉에 앞서는 것으로 주자학파를 중심으로 송대 이후 중국 유학사를 정통론적 입장에서 정리한 문헌이다. 64세에 이연방(李蓮坊)의 심무체용론(心無體用論)을 논박했고, 66세에 이언적(李彦迪)의 유고를 정리, 행장을 썼으며 〈심경후론 心經後論〉·〈양명전습록변 陽明傳習錄辨〉을 지었다.

68세에 성리학의 주요문헌에 나오는 개념을 유기적으로 구성하여 핵심적 교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성학십도〉, 70세에 마지막 작업으로 〈사서석의 四書釋疑〉를 편찬했다.

이황의 성리학은 정자와 주자가 체계화한 개념을 수용하여 이를 보다 풍부히 독자적으로 발전시켰으며, 이(理)를 보다 중시하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란 특성을 지니고 있다(이기론). 그는 이를 모든 존재의 생성과 변화를 주재(主宰)하는 우주의 최종적 본원이자 본체로서 규정하고 현상세계인 기(氣)를 낳는 것은 실재로서의 이라고 파악했다.

그는 주자의 이해와는 달리 기와 마찬가지로 이가 동정(動靜)하고 작위(作爲)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이가 동정하지 않고 작위성이 없다고 한 종래의 이론은 이의 체(體)의 측면이고 그 용(用)의 면으로 말하면 이 또한 동정하고 작위하는 성질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이와 기의 관계는 이주기종(理主氣從)·이존기천(理尊氣賤)의 구조를 가지며, 이는 기보다 절대적·우월적인 것이 된다.

이황의 이러한 이기론의 구조와 특성은 심성론(心性論)에서 보다 뚜렷이 드러난다. 그는 심(心)이 성(性)과 정(情)을 통괄한다는 주자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성과 정의 근원을 이와 기를 분별(分別)하는 방법을 통해 구했다. 성을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누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도 역시 4단과 7정으로 나눌 수 있으며 각각에 대해서는 이와 기로써 근원을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사단칠정). 특히 정에 대한 이해는 기대승과 8년 동안이나 토론을 벌이며 이기호발설로 정밀히 체계화했다(사단칠정논쟁). 곧 "4단은 이가 발함에 기가 따르는 것이고, 7정은 기가 발함에 이가 타는 것"(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이라 하여 4단은 이에 근원하고 7정은 기에 근원하여 각각 발한다고 했다.

기대승은 이것이 이와 기를 독립된 물(物)로 생각하는 것이며 이와 기가 떨어질 수 없다는 원칙을 벗어나는 것이라 비판했다. 그러나 이황의 이러한 이해는 인간의 선한 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맹자의 본래 뜻을 살리기 위한 의지에서 나온 것이다. 기만 있고 이의 탐[乘]이 없으면 인간은 이욕(利欲)에 빠져 금수(禽獸)로 된다고 보았던 그는 본성의 단서로 간주되는 사단을 이가 발한 것이라고 역설함으로써 인간 본래의 선한 본성이 자연적으로 발현되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이(理) 우위론적 철학은 이성에 의한 적극적 실천을 보다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주자학에 바탕을 두면서도 이를 한층 발전시켰던 이황은 불교와 도교는 물론, 유교의 양명학(陽明學), 서경덕(徐敬德)의 기일원론(氣一元論), 나흠순(羅欽順)의 주기설(主氣說), 오징(吳澄)의 주륙(朱陸) 절충적 견해 등은 모두 이단·사설로 비판·배척했다.

특히 16세기초에 이미 소개되어 확산되던 양명학과 서경덕·나흠순의 견해를 집중적으로 비판하여 조선의 주자학이 성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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