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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6. 1. 10, 함북 성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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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99. 9. 23 |
국적 | 북한 |
요약 북한의 정치 관료.
정무원 총리, 부주석 등을 두루 역임하며 북한 체제를 이끌었던 북한의 정치 원로였다.
함흥 영흥중학교와 일본대학 전문부를 거쳐 1940년 만주 하얼빈공과대학을 졸업했다. 1944년 평북 성진에서 '적우회'(赤友會)를 조직해 항일 공산주의운동에 참가했고 1948년 성진방직공장 지배인으로 근무했다. 이종옥은 1949년 산업성 국장으로 북한 정계에 진출해 1950년 산업성 부상(副相), 1951∼52년 경공업상, 1956년 당 중앙위원회 공업부장 및 국가계획위원장이 되었다.
1956년 4월 당 중앙위원과 정치국 후보위원, 1960년 내각 부수상 겸 중공업위원회 위원장, 1962년에는 내각 부수상 겸 금속화학공업상에 선임되었고, 그 후 1965년 과학원 원장을 거쳐 1972년 6월 광업상, 그해말 제5차 내각에서는 중공업위원장 겸 중앙인민위원, 1973년 당 정치위원회 후보위원, 1976년 정무원 부총리를 지냈다. 1977년 제6차 내각에서는 제2차 7개년계획(1978∼84)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0년 제6차 조선노동당대회에서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상무위원의 한 사람이 되었는데, 이때 그는 경제 요직을 두루 거친 경제 분야 전문가로서 김일성과 김일에 이어 서열 3위로 북한 권력의 핵심에 올랐다. 1982년 제7차 내각에서도 정무원 총리가 되었으며,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이후 1984년 1월 국가 부주석으로 선임되었고, 1988년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 시대에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이른바 혁명 1세대로서 김정일 시대에는 외국인사 접견 등 주로 외교활동에 주력했다. 1994년 9월 김일성 사망 후 북한 최고위 인사로는 처음으로 중국 국가창건 4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리펑[李鵬] 총리와 면담하기도 했다.
그는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사실상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다. 1999년 지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1992년에는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그의 장례식은 1999년 9월 25일 국장으로 거행되었으며 그의 시신은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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