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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0. 6. 24, 충남 당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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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62. 11. 20 |
국적 | 한국 |
요약 독립운동가.
본관은 덕수. 일명 이방(李芳)·윤봉조(尹鳳朝). 자는 만위(晩瑋), 호는 춘호(春湖)·한정(韓汀)·법명(法明). 경성법정전수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종로경찰서에 구속되었다가 석방되었다. 그해 10월 200석 소출 규모의 토지를 매각한 대금을 강태동(姜泰東)을 통해 상해임시정부에 전달했다. 1921년 6월에는 270석 소출 규모의 토지를 매각한 대금을 가지고 임경호(林敬鎬)와 함께 베이징[北京]으로 건너가, 이회영(李會榮) 등 상해임시정부 요인들에게 전달했다.
1922년 4월 자금 조달을 위해 귀국했다가, 서울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이어 1924년 가을에는 230석 소출 규모의 토지를 매각한 대금을 가지고 민효식(閔孝植)·최선근(崔宣根) 등과 함께 톈진[天津]·베이징을 경유하여 상하이[上海]로 가서 이시영(李始榮)에게 전달했다. 또한 상하이에 있는 민효식의 종형 민정식(閔庭植)을 방문하여 독립자금을 헌납하게 하고 귀국했다. 1925, 1929년 남은 토지를 모두 매각하여 상해임시정부에 전달했다.
1932년에서 해방 때까지 이시영의 명을 받아 임시정부의 자금 조달을 위해 평안북도 구성·삭주 등지에서 광산을 경영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의 회합 및 은신처를 제공해주었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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