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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다른 표기 언어 李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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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368(공민왕 17)
사망 1429(세종 11)
국적 고려·조선, 한국

요약 이원은 조선 개국 초기에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제도를 확립하는데 공헌했다. 특히 관직에 있으면서 일을 곧고 바르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근과 정몽주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1385년 문과에 급제했다. 태종의 즉위에 협력하여 1401년(태종 1) 좌명공신에 책록되고 철성군에 봉해졌다. 공안부윤을 거쳐 대사헌으로 있을 때 순군 윤종을 구타해 파직되었다. 1408년 태조가 죽자 빈전도감판사가 되어 국장을 주관했으며, 1415년 외척간의 혼인을 금하는 상소를 올렸다. 세종이 재위기에 좌의정에 이어 영의정에 올라 세종의 정치 이상실현에 공헌했다. 1422년 태종이 죽자 정탁과 함께 국장도감도제조가 되어 장례를 주관했다. 1426년 노비를 강제로 빼앗았다는 모함을 받아 공신녹권을 회수당하고 여산에 안치되었다가 죽었다. 저서로는 <용헌집>, <철성연방집>이 있다.

본관은 고성. 자는 차산(次山), 호는 용헌(容軒). 할아버지는 수문하시중 암(嵒)이고, 아버지는 밀직부사 강(岡)이며, 어머니는 청주곽씨이다. 어려서는 매부인 권근(權近)에게 배웠으며, 정몽주(鄭夢周)에게도 배웠다. 1382년(우왕 8) 성균진사과, 1385년 문과에 급제했다. 이어 사복시승·예조좌랑·병조정랑 등을 역임했다.

1392년(태조 1) 사헌부지평이 되어 10조의 상소를 올리고 노비를 속공할 것을 건의했다. 1396년 사헌부중승이 되었으며, 태종의 즉위에 협력하여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록되고 철성군(鐵城君)에 봉해졌다. 공안부윤을 거쳐 대사헌으로 있을 때 순군 윤종(尹琮)을 구타해 파직되었다.

1402년 경기좌우도도관찰출척사가 되었으며 1403년 승추부제학이 되었고, 이어 고명부사로 성석린(成石璘) 등과 함께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이어 평양부윤·서북면도순문찰리사·예문관제학·대사헌·한성부사 등을 지냈다. 1408년 태조가 죽자 빈전도감판사가 되어 국장을 주관했으며, 이어 경상도순찰사·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1411년 철성부원군에 봉해졌다. 1415년 외척간의 혼인을 금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추충익대좌명공신 호를 받고 이어 예조판서·대사헌·판한성부사·의정부참찬·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1417년 평안도·황해도의 응방인(鷹坊人)을 추쇄하여 군역에 충당시키고 1418년 군무사의를 논한 글을 올렸으며,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다. 세종이 즉위한 후 영경연사를 겸임했으며, 이어 봉숭도감도제조가 되었다. 1419년(세종 1)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20년 집현전영전사를 겸임했다. 1421년 도성수축도감도제조가 되었으며 이어 좌의정으로 임명되었다.

1422년 태종이 죽자 정탁(鄭擢)과 함께 국장도감도제조가 되어 장례를 주관했으며, 1425년 진하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26년 노비탈점 혐의로 공신녹권을 회수당하고 여산에 안치되었다가 죽었다. 1455년(세조 1)에 공신녹권을 돌려받았으며, 양헌(襄憲)이란 시호를 받았다. 저서로는 〈용헌집〉·〈철성연방집 鐵城聯芳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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