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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규

다른 표기 언어 李雲圭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미상
국적 조선, 한국

요약 조선 후기의 사상가.

본관은 전주. 본명은 수증. 호는 연담. 운규는 별칭이다. 일찍이 관로에 올라 문참판의 벼슬을 했으나 국운이 쇠약해지자 충청도 논산군 양촌면 모촌(또는 띠울)에 은거했다.

그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 이서구(李書九)의 학통을 이어 천문·역산·역학·시문에 능통했다고 한다. 특히 사람을 판별하는 능력이 뛰어나 세상을 구할 사람으로 최제우(崔濟愚)·김광화(金光華)·김일부(金一夫)를 선택하여 각각에게 가르침을 베풀었다.

그리하여 1861년에는 세 사람을 불러 최제우에게는 선도를 계승할 자라 하여 '시천주조화정'이라는 주문을 주어 열심히 독송하여 심신을 연마하라 했고, 김광화에게는 불교를 계승할 자라 하여 '남문을 열고 바라를 치니 계명산천이 밝아온다'라는 주문을 주었다. 또 김일부에게는 '영동천심월'의 시를 주고는 표홀히 사라져 전라도 무주 용담으로 갔다고 한다.

나중에 최제우는 동학을 일으켰고, 김광화는 남학을 세웠다. 또 김일부는 이후 19년 동안 이운규가 남긴 시구의 뜻을 구명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1879년 조선 후기 후천개벽 사상의 체계적 논술인 〈정역 正易〉을 저술했다. 이운규는 무주에 은거하다가 고향인 천안으로 갔다고 하는데 그뒤의 행적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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