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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422(세종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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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484(성종 15) |
국적 | 조선, 한국 |
요약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양성. 자는 윤보(胤保), 호는 삼탄(三灘). 고려 공민왕 때 도첨의시중을 지낸 춘부(春富)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증병조판서 온(蒕)이다.
1447년(세종 29)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집현전부수찬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문과중시에도 합격했다. 부교리를 거쳐 1451년 사가독서를 한 뒤 1454년(단종 2) 장령이 되었다. 세조가 즉위한 뒤 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며, 1457년(세조 3) 예문관응교로 〈명황계감 明皇誡鑑〉을 한글로 옮겼고, 이듬해에는 예조참의로 〈초학자회언해본 初學字會諺解本〉을 지어 바쳤다.
1459년 사은사의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이조참의·예문관제학·충청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고 양성군(陽城君)에 봉해졌으며, 예조판서 겸 지경연사를 지냈다. 이때 경연에서 사서의 간행·보급 및 교육의 강화와 불교 탄압을 주장했다. 그뒤 우참찬을 거쳐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올라 이조·형조 판서를 지내면서 신숙주(申叔舟)·강희맹(姜希孟) 등과 함께 〈국조오례의 國朝五禮儀〉를 편찬했다.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예악·병형·음양·율력(律曆)·의약·지리(地理) 등에도 능통했다. 저서에 〈삼탄집〉이 있다. 시호는 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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