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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한국계 미국 재활의학 의사.
1973년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뉴욕 퀸즈 플러싱에 정착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체조 경기에서 나디아 코마네치의 경기를 보고 감명을 받아 체조를 시작했고, 15세에 두각을 나타내 올림픽 트레이닝 센터에 들어가게 되었다. 1982년 국제 친선 주니어 체조대회 종합 3위, 전미 체조대회 청소년부에서 마루와 도마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1983년 훈련 중 사고로 경추를 다쳐 목 아래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사고 전까지 이승복은 대한민국 국가대표의 꿈을 가지고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고 후 오랜 고난과 재활을 거쳐서 팔과 손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재활과정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열의가 생겼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끝난 후 가을, 이승복은 공부를 결심하고 뉴욕대학교에 입학했다. 문학을 전공하고 난 후, 의과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했으나, 학장이 추천서를 써 주지 않아 의과대학 진학을 일단 접어두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공중보건학 석사를 받았다. 주위의 격려와 그의 끊임 없는 노력 끝에 1993년 다트머스 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는 휠체어를 탄 첫 의학생도였다. 2001년 졸업을 했고, 하버드 의과 대학교에서 인턴을 마쳤다. 존스홉킨스대학병원에서 재활의학 수석 전문의로 근무하게 되었다. 동료 의사들은 이승복은 척추외상환자를 돌보는 데, 정상 의사들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해 줄 수 있다고 평가한다. 그의 별명은 '슈퍼맨 닥터 리'이다. 영화 〈슈퍼맨〉의 주연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와 같은 증상을 앓았고, 극복해냈기 때문이다. 같은 이름으로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2005)이 방영되었으며, 저서로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2005)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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