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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533. 9. 27, 트란실바니아(지금의 루마니아) 실라디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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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586. 12. 12, 폴란드 그로드노 근처 |
국적 | 트란실바니아 |
요약
트란실바니아의 대공(1571~76)이며 폴란드의 왕(1575~86재위).
(영). Stephen Bthory. (폴). Stefan Batory.
폴란드 왕위를 노리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보자를 성공적으로 물리쳤고,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서 폴란드의 발트 해 동부지방을 지켰으며, 폴란드와 모스크바 공국 및 트란실바니아를 합쳐 강대국을 만들려고 애썼다.
그의 아버지는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의 헝가리 왕 밑에서 트란실바니아 총독으로 봉직했으며, 이름은 역시 이슈트반 바토리였다. 아들인 이슈트반은 1556년에 새로 독립한 트란실바니아의 대공 야노슈 지그몬드 자포요를 섬기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총사령관이 되었고 헝가리인들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1571년 5월 25일에 그를 트란실바니아 대공으로 선출해 자포요의 뒤를 잇게 했다.
폴란드 귀족들은 폴란드 왕 후보로 나온 합스부르크 왕가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2세를 거부하고, 1575년에 이슈트반 바토리를 폴란드 왕으로 선출했다(이슈트반은 죽은 폴란드 왕 지그문트 1세의 사위였음). 이슈트반은 트란실바니아 군주 자리를 동생 크리스토프에게 물려준 뒤, 서둘러 크라쿠프로 가서 1576년 5월 1일에 대관식을 올렸지만, 그가 나라를 완전히 평정한 것은 그다인스크를 진압한 1577년말이었다.
그후 그는 폴란드 최대의 적인 모스크바 공국과 맞설 수 있었는데, 당시 모스크바 공국은 발트 해로 나가는 출구를 폴란드로부터 빼앗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투르크와 휴전협정을 맺고, 카자크족을 정기적으로 모집해 폴란드군을 강화한 이슈트반은 1579년에 러시아 황제인 뇌제(雷帝) 이반 4세를 공격했고, 리보니아 전쟁을 끝내면서 얌 자폴스키 휴전협정(1582. 1. 15)에서 폴로츠크와 리보니아를 폴란드에 할양하라고 강요했다.
이슈트반은 개인적으로는 다른 종교적 견해에 대해 너그러웠지만 강한 의지를 지닌 로마 가톨릭교도로서, 반종교개혁 정책을 추진하여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려고 애썼기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상당한 저항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국내의 어려운 문제 때문에 국외에서의 야심 찬 모험에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그의 목표는 폴란드와 모스크바 공국 및 트란실바니아를 통합·지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러시아와 다시 전쟁을 벌일 준비를 했고, 죽을 때까지도 오스만 제국에 대한 십자군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는 폴란드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야심만만한 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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