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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100경, 잉글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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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169경, 아키텐 푸아티에 근처 에투알 |
국적 | 잉글랜드, 영국 |
요약
수사·철학자·신학자.
(영). Issac of Stella.
12세기 그리스도교 인문주의의 지도적 사상가로서 신플라톤주의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종합을 제안했다. 영국과 파리에서 공부한 뒤 디종 근처의 시토 대수도원에 들어갔다. 이곳은 클레르보의 베르나르가 일으킨 시토 수도회 수사들의 개혁 중심지였다.
1147년 시토 수도회 공동체인 에투알의 대수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몇 해 뒤에는 프랑스의 라로셸 항구 근처에 있는 레 섬에 수도원을 세우려 했다. 이곳에서 일련의 사순절 회의를 개최하여 신의 존재를 피조물의 불완전성을 통해 증명하려 했고 또 속죄론을 제시했다. 그의 주장은 11세기의 대표적 철학자인 캔터베리의 안셀무스의 논리적 방법에서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와 위(僞)디오니시우스 등 5세기 라틴 및 그리스 신플라톤주의의 사상도 받아들였다.
에투알로 돌아온 이사크는 클레르보의 수사 겸 철학자 알케르의 요청으로 대표작 〈영혼에 관하여 알케르에게 보내는 편지 Epistola de anima ad Alcherum〉(1162)를 썼다. 이 글은 신비주의 이론의 논리적 기반을 제공하기 위해 시토 수도회 전통의 심리학을 개괄한 것이었다. 이 글은 중세의 유명한 논고 〈성령과 영혼에 대하여 De spiritu et anima〉의 기초가 되었다.
이 논고는 오랫동안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로 믿어졌으나 현재는 알케르가 썼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영혼에 관하여 알케르에게 보내는 편지〉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플라톤주의의 심리학 이론을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와 결합했다. 플라톤의 전통에 따라 이사크는 실재의 위계질서(육체·영혼·신)를 인식능력의 상향적 질서로 보았고, 영혼을 이성, 욕망, 감정 기능 등 3부분으로 구분했다. 그러나 그의 인식론은 5가지 형태의 감각지각, 기억과 상상력, 개별대상에서 보편개념을 추상하는 추론능력 등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견해를 포함하고 있다.
나아가 지성 또는 영원한 이데아를 바로 파악하는 능력과 사람들이 신의 실재를 직관하게 만드는 지력(知力)은 신플라톤주의적 경향까지 드러낸다. 또 신비주의의 영향은 인식의 최고 수준이 신의 조명이 매개해야만 가능하고 신을 알기 위해서는 '부정의 문'(via negativa)을 통해야 한다는 것, 즉 신의 실재는 모든 물질적·인간적 속성을 부정한다는 그의 생각에서 나타난다. 신플라톤주의를 탁월하게 파악했던 이사크는 성서를 하나의 철학적 관점에서 해석했다. 1979년에 영역본 〈전례력(典禮曆)에 따른 설교 Sermons on the Liturgical Year〉(1권)가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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