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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7(광무 1),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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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78 |
국적 | 한국 |
요약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 일명 병욱. 호는 강재.
1912년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2년 만에 중퇴하고, 경성중국어강습소에 들어가 1915년 졸업했다. 그후 만주로 망명하여 펑톈[奉天]에서 해천양행을 경영하면서 광한단 등의 민족운동단체와 관련을 맺고, 당시 만주에 있던 김좌진(金佐鎭)·윤세용(尹世茸)·전덕원·이호연(李浩然) 등과 상하이[上海]·베이징[北京] 등지에 있던 이시영(李始榮)·신채호·노백린·김규식(金奎植)·김동삼(金東三) 등과의 연락을 담당하는 한편, 중국으로 망명하는 독립지사들을 돌보아주었다.
1920년 펑톈 성 연락기관장 윤세용의 지령으로 동지 홍영식과 함께 폭탄과 권총을 국내로 밀반입하다가 체포되어 신의주지방법원에서 2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다시 만주로 망명하여 김동삼·채상덕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대한통의부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1924년 2월 의장 김동삼의 지령으로 국내에 잠입하여 서울 효제동 13번지에 대한통의부 지부를 설치하고, 이탁(李沰)을 지부장으로 세운 후 자신은 참모로서 각 지방 부호에게 협박장을 보내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했다. 또한 일제 고관과 친일파의 주살, 관공서의 폭파 계획도 세웠으나 1924년 10월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1932년 출옥한 뒤 다시 만주로 건너가 경성현 최가둔(崔家屯)에서 농장을 경영하며 지하운동을 전개했다. 8·15해방 후에는 독립동지회를 결성하여 중앙위원 겸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1968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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