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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안

다른 표기 언어 李東安
요약 테이블
출생 1906. 12. 6, 경기 화성
사망 1995. 6. 20, 수원
국적 한국

요약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기예능보유자.

호는 운학(雲鶴). '이 시대의 마지막 재인(才人)', '민속예술의 증인' 이라고 불렸던 전통 춤꾼으로, 태평무·승무·진쇠춤·신칼대무·한량춤·희극무·엇중모리·살풀이·팔박무·기본무·승전무·화랑무 등 30여 가지에 달하는 전통춤의 원형을 보존해왔으며, 소리[唱]·재담·승무·탈춤의 노장과장 및 줄타기에도 능했다.

이동안은 경기도 화성에서 조선시대 전문 예인을 관리하던 재인청(才人廳) 수장 도대방(都大房)을 세습해오던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예인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집안 어른들의 뜻을 거스르고 13세 때 몰래 집을 나가 남사당패를 따라다니며 연희를 배웠다. 1년 만에 아버지에게 붙들려 부모의 뜻에 따라 혼인했으나 3일 만에 다시 달아난 그는 광무대와 원각사를 거치며 김인호에게 전통춤을, 박춘재에게 발탈을, 그리고 김관보에게 줄타기를 배웠다. 줄타기를 하면서 국수를 먹을 정도로 뛰어난 기예를 보였던 그는 광무대 생활을 마친 후 10여 년 간 대동가극단을 조직해 만주와 러시아 국경지대로 원정공연을 다녔고, 조선음악무용연구회와 권번(券蕃)에서 춤을 가르쳤으며 1958년에는 대한국악원 창립회원이 되었다.

충청남도 온양에서 무용평론가 정병호에 의해 발굴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동안 무용연구소가 설립되었고, 1980년부터는 선화예술고등학교·대성여자고등학교 등에서 무용을 가르쳤으며, 1981년에는 미국·일본 등지를 돌며 순회공연을 가졌다. 그의 제자로는 발탈에 박정임, 전통춤에 김백봉·정승희·강선영·문일지 등이 있다. 발탈은 비좁은 포장 속에 발탈꾼이 들어가 오른 발에 탈을 씌워 고갯짓을 시키면서 두 손으로 허수아비 탈을 씌워 조종하는 놀이로, 이동안은 1983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기예능보유자로 지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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