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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4(고종 21), 평북 정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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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미상 |
국적 | 한국 |
요약 독립운동가.
1909년 11월 이재명(李在明)을 비롯한 평안도 출신의 지사들이 매국노 이완용(李完用)과 일진회의 이용구(李容九)를 처단하기로 계획하자, 그해 12월 6일 밤 평양 박태은(朴泰殷)의 집에서 이재명·김정익(金貞益)·이응삼(李應三)·전태선 등과 함께 회합을 갖고, 이재명·김병록(金丙錄)과 함께 이완용의 처단을 맡았다. 같은 해 12월 23일 김병록과 함께 명동성당 부근에 은신해 있다가 군밤장수로 변신해 있던 이재명이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을 단도로 찌르는 현장을 목도하고 동지들에게 이 상황을 전하고 피신했다.
이 사건으로 궐석재판에서 15년형을 언도받았다. 피신중 각지를 전전하며 동지들을 규합했으며, 1919년 4월 23일 서울에서 열린 국민대회에 13도대표로 참석했다. 그뒤 상하이[上海]로 망명해 항일투쟁을 하다가 1924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이전의 이완용 살해미수사건 궐석재판의 시효가 넘지 않아 15년간 복역했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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