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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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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357(공민왕 6) |
국적 | 고려, 한국 |
요약 고려 후기의 문신.
남원 거녕현(居寧縣) 출신이다. 1313년(충선왕 복위 5)에 충선왕이 충숙왕에게 선위한 뒤 원(元)나라에 가 있을 때 반전별감(盤纏別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청렴결백했다.
1320년(충숙왕 7) 모략을 받고 서장으로 귀양가는 충선왕에게 금을 몰래 전해주어 왕을 궁핍하지 않게 했다. 1325년 충선왕이 죽자 그 시체를 운반하여 고려로 돌아왔다. 충숙왕 때에는 밀직부사를 거쳐 우상시가 되었다. 1326년 원나라에서 고려에 성(省)을 설치하여 고려를 원의 내지로 만들려고 하자, 김이(金怡)·전영보(全英甫) 등과 함께 원나라 황제에게 청원하여 그 계획을 파기시켰다. 그 공로로 공1등에 책록되었고 부모는 작위를 받았으며, 처자는 토지와 노비를 받았다.
1328년 감찰대부가 되었다가 1330년 충혜왕이 즉위하자 첨의평리로 임명되었다. 1341년(충혜왕 복위 2) 정승이 되었으며, 이듬해 심양왕(瀋陽王) 고(暠)를 고려왕으로 즉위시키려 한 조적(曺頔)의 난이 일어났을 때 충혜왕을 시종했던 공으로 공1등에 등록되고 그뒤 영천부원군(寧川府院君)에 봉해졌다. 1351년에 공민왕이 즉위하고 난 뒤에는 좌정승영도첨의사를 지내고 1357년에 문하시중으로서 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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