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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9, 강원 삼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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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98 |
국적 | 북한 |
요약 작곡가. 1940년 <마이니치 신문>이 주최한 음악 콩쿠르와 1942년 <요미우리 신문>과 도호 영화사가 주최한 교향곡 현상모집에서 입상해 음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6·25전쟁 즈음 월북했다. 북한에서는 1953년 숙청되었다가 1960년 복권되어 활발한 창작활동을 벌였다. 대표작으로는 <가는길>·<금잔디>·<동백꽃> 등이 있다.
작곡가. 1919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東京] 고등음악학교에서 수학했다. 1940년 22세 때 일본 〈마이니치 신문(每日新聞)〉이 주최하는 음악 콩쿠르에 실내악 작품 〈바이올린 조곡〉이 2등으로 입상했으며, 1942년 〈요미우리 신문(讀賣新聞)〉과 도호[東寶] 영화사가 공동 주최한 제1회 교향곡 현상모집에서 교향시 〈청년〉이 2등으로 입상했다.
1943년 귀국한 뒤 징용을 피하기 위해 개성고등여학교·강릉고등여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있으면서 당시 음악운동 모임인 성연회에서 활동했다. 8·15해방 후 민요풍의 해방가요 〈여명의 노래〉와 당시 통일전선 조직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의 노래인 〈민전행진곡〉을 작곡했으며 조선음악가동맹에서 김순남·박영근 등과 활동했다. 1949년 9월 좌익 검거가 강화될 때 구속되었다가 6·25전쟁 즈음에 탈옥, 월북했다.
북한에서 1953년 숙청되었다가 1960년 복권되어 성악곡과 가극, 기악곡 200여 편을 작곡할 만큼 활발한 창작활동을 벌였으며 공훈예술가로 대접받고 있다. 1990년 평양의 윤이상음악연구소 명예연구사로 임명되었고, 200여 곡에 이르는 작품을 창작했다. 1997년에 작곡집 〈동백꽃〉을 발표했다. 그는 전통적인 수법과 현대적인 작곡기법을 절충하면서도 가곡이 지닌 서정성을 추구하는 한편, 현대적인 열기를 담대하게 풀어내고 있는 작곡가로 평가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가는 길〉·〈금잔디〉·〈소년 빨치산의 노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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