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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20년 10월 만주 펑톈 성[奉天省] 화이더 현[懷德縣] 우자쯔[五家子]에서 편강렬(片康烈)·양기탁(梁起鐸)·남정(南正) 등이 조직한 항일독립운동단체. 무장투쟁을 지향하는 단체로, 전투적으로 독립을 이루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일제 기관을 파괴하는 데에 일조했다. 이후 활발한 의열투쟁을 하다가 단장 편강렬이 검거되면서 단체의 활력은 급격히 감소했고, 결국 1924년 정의부에 흡수 통합되었다.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을 전취(戰取)한다는 목적에서 조직된 단체로서, 지린[吉林]·창춘[長春]·이퉁[伊通] 등지를 근거로 일제 기관 파괴와 친일주구 숙청에 큰 활약을 했다.
간부진은 고문 양기탁·남정, 단장 편강렬, 부단장 한동추(韓東樞)·승진(承震), 총무 김정관(金靜觀)·심준구(沈駿求), 재무 박옥산(朴玉山)·지응진(池應鎭), 회계 김사식(金士寔), 지휘 곽도송(郭島松)·백운봉(白雲峯), 검사감(檢事監) 지응승(池應昇), 국내주재특파원으로는 서울 편강렬, 평안남북도 김시율 등과 대원으로 김철부(金鐵夫)·박훈(朴勳)·김명제(金明濟)·김활송(金活松)·김석익(金石翊) 외 250여 명이었다.
단원훈련소를 설치하여 단원을 양성하고, 남만주일대의 일제기관, 일본인관리 및 친일주구의 처단 등 활발한 의열투쟁을 했다. 특히 편강렬의 지휘하에 창춘의 일본영사관·경찰서, 펑톈의 일본영사관·경찰서·만철병원을 습격하는 등 큰 전과를 올리는 한편, 서로군정서·통의부·구국단·길림주민회 등과 상호 연락하여 전만통일주비회(全滿統一籌備會) 조직에 호응·활약했다. 그러나 일제 밀정 김성곤(金成坤)의 밀고로 편강렬이 일본경찰에 체포되자, 의열활동력이 급격히 쇠퇴해갔다. 이후 승진·박성장 등이 편강렬의 뒤를 이어 단장이 되었지만, 활동은 미약했으며 1924년 7월 정의부에 흡수·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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