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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7. 6. 19,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 마타벨렐란드 세모크웨 리저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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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99. 7. 1, 짐바브웨 하라레 |
국적 | 짐바브웨 |
요약 짐바브웨의 흑인 민족주의자.
짐바브웨 아프리카 인민동맹(ZAPU)의 지도자이며, 오랫동안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의 경쟁자였다. 소수 백인들의 지배에 맞서 자유를 위한 투쟁을 이끈 인물이다.
흑인 민족주의 게릴라들을 지원하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는 협상에 능한 인물로 무력보다 협상을 선호했다. 은코모의 아버지는 마타벨렐란드에서 목축을 하면서 교사와 평전도사 일을 보았다. 그는 로디지아 남부의 다수 종족인 은데벨레(마타벨레)족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카랑가족이었다. 로디지아에서 초급학교를 다닌 은코모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건너가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고, 1945년 고국으로 돌아온 뒤 로디지아철도회사에서 일했다. 1951년에는 로디지아 흑인 철도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지도자가 되었다. 또한 그해에 요하네스버그의 남아프리카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았다.
은코모는 갈수록 정치적 영향력이 증대해 1957년 로디지아의 흑인 민족주의 기구인 아프리카 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ANC)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59년초 ANC가 불법화되자 투옥을 피해 영국으로 피신했다. 1960년 다시 귀국해 민족민주당(National Democratic Party /NDP)을 창당했다. 1961년 NDP도 불법화되자 ZAPU를 창설했다.
이언 스미스 총리의 인종차별적 체제에서 은코모는 1964년부터 10년 이상 감금되었다. 석방된 뒤 그는 스미스와 협상해 흑인의 자유를 얻고자 했으나 결국 그 목적 실현을 위해 국제적 지지를 끌어모으고자 로디지아를 떠나야만 했다. 아프리카와 유럽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로디지아의 흑인 다수파 통치 실현이라는 ZAPU의 목표를 선전했다. 은코모는 로디지아의 백인 통치에 반대해 일어난 게릴라전을 이끌었으나, 그의 부대는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Zimbabwe African National Union/ZANU)을 이끄는 로버트 무가베의 부대보다 역할이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두 조직은 1976년 이후 '애국전선'이라는 불안정한 동맹기구로 합쳐져 은코모와 무가베가 공동 지도권을 가졌다. 백인통치의 로디지아가 1979~80년 흑인통치의 짐바브웨로 바뀌고 난 뒤 은코모와 은데벨레족의 지지를 받는 ZAPU는 다수파 쇼나족을 지지 기반으로 삼는 무가베의 ZANU에 밀려 갈수록 세력이 약해졌다. ZANU는 1980년 의회선거에서 은코모의 ZAPU를 크게 이겼다. 신임 총리가 된 무가베는 은코모를 내각에 기용했지만, 쿠데타를 우려해 1982년 그를 해임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쇼나족과 은데벨레족은 이후 5년 동안 유혈 투쟁을 벌였다. 무가베는 은코모의 도움 없이는 마타벨렐란드를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1987년 두 당의 합병 협정을 체결했다. 그 결과 마침내 종족간의 화해가 이루어졌다.
1990년 은코모는 영향력은 있지만 권력이 제한된 부통령이 되었다. 1984년에 자서전 〈은코모, 내가 살아온 이야기 Nkomo, the Story of My Life〉가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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